▶ 문인협회 여름문학캠프 강연차 LA 온 도종환 시인
도종환(55) 시인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좀 정치적이라고 여겼다.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 때 제관을 맡기도 했고, 최근 민주당 의원총회에 나가 ‘후퇴하는 민주주의와 스노보크라시’(속물정치)라는 제목으로 강연도 했으며, 그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한국작가회는 얼마 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시국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래 전 그가 전교조 활동에 앞장섰다가 해직과 복직을 반복했던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이력이다.
그런데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면서 들여다본 시인 도종환은 ‘접시꽃 당신’(1986)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맑고 성실하고 진지했으며 아이 같은 웃음을 가진 이였다. 그는 “매일 의도적으로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런 노력이 도종환을 오래도록 사랑받는 시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시인이 ‘정치적’이라면, 그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또 왜일까. 그가 말한 대로 “시인의 역할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그의 좋은 시가 추악한 정치판을 조금 덜 추악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과연 누가 알겠는가.
22~23일 팜스프링스에서 열리는 미주한국문인협회(회장 장태숙)의 여름문학캠프 강연차 LA에 온 도종환 시인을 인터뷰 했다. 그는 LA가 처음이라고 했다.
많은 작품보다 이름 남길 글 써야
사람 마음 움직이는 게 시의 역할
투철하게 노력하는 장인정신 필요
-문학캠프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글 쓰는 분들에게 한 편의 좋은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많이 쓰는 것보다 자기 이름과 함께 남을 수 있는 시,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한 편의 시를 쓰려고 노력하자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접시꽃 당신’이 그런 시인가? 그 외에 또 시인의 이름과 함께 남을 시나 시집이 있나
▲2006년에 나온 ‘해인으로 가는 길’을 꼽고 싶다.
-희귀병에 걸려 속리산 숲 속에서 투병했다는데 완쾌됐나
▲희귀병은 아니고, 너무 많은 일을 무리하게 한 탓에 병이 났다. 과부하 걸린 기계처럼 못 견뎌서 쓰러진 병이다. 7년 전에 들어가 일이년은 몸을 추스르고 나머지는 혼자 읽고 쓰고 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참 다행스러운 시간이었다. 늘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쫓기는 삶이었는데 지난 7년은 조용히 행복하게 보냈다(도종환은 2003년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심신이 무기력해지는 병에 걸려 27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났다).
-시낭송회, 강연, 방송 등 대외활동이 무척 많은 것 같다. 시인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데, 시심을 어떻게 찾고 유지하나
▲가능하면 덜 바쁘게 생활하려 애쓰고, 매일 아침 1시간씩 명상한 다음 하루를 시작한다. 또 이동하는 사이사이 자투리 시간에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하고 있다. 마음과 생활이 정돈된 상태로 움직이지 않으면 시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 때 진행을 맡았는데
▲급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안숙선, 양희은 등 노제 참여팀이 바로 대통령 취임식 때 축시 낭송하고 축가 부른 사람들이어서 다함께 팀처럼 동원됐다. 국민적 슬픔을 달래고 다독일 수 있는 마지막 이별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참여했다. 축시를 낭송했던 내가 사회를 보고, 양희은은 축가로 불렀던 ‘상록수’를 다시 노래했다. 그 자체가 비극 아닌가. 축가가 조가가 되고 축시가 조시가 된 상황이…
-그래도 한국작가회의 시국선언은 정치적으로 보인다
▲정권교체에 의해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기자들을 구출해온 모습을 보라. 민주주의가 성숙하면 전직 대통령이 큰일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형편이니 안 되겠다고 느낀 것이다. 이것은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이며 문인들도 같은 목소리를 낸 것뿐이다.
-지난해 동시집 ‘누가 더 놀랐을까’를 냈다고 들었다. 어떻게 동시를 쓰게 됐나.
▲산에서 생활한 결과다. 아파서 들어가 있는 동안 마음이 맑아지면서 쓰게 됐다. 동시는 정서적으로 단순간결하고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쓰여진다. 아침에 명상 끝난 후의 ‘청안’ 상태, 즉 마음이 맑고 고요해진 상태에서 쓰여진다. 처음에 ‘동시가 찾아오는구나’ 하고 느꼈을 때 ‘고맙다, 내가 동시를 다 쓰다니’ 하는 마음과 함께 톨스토이가 만년에 동화를 썼던 일을 생각했다. 그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쉬우면서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시인으로서 동시를 쓰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아이들 입장에서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면서 쓴 시는 재미있고 단순하다. 그러나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를 위해 쓴 시는 교훈적이며 가르치려는 성급함이 담겨 있다. 바로 그런 시들이 평론가들로부터 지적을 많이 받았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성인보다 한창 크는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시인도 많고 시를 많이 쓰는 민족이 없다고 한다. 시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쉽게 쓰는 것 아닌가
▲우리는 결혼식에서도 축시를 읽고, 장례식에서도 조시를 읽으며 교지나 문집 같은 데도 첫 장에는 꼭 시를 써넣는 민족이다. 신문에 시를 싣는 나라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생활 속에서 시를 즐기고 많이 쓰는 것은 좋은 문학전통이다. 앞서 말한 ‘좋은 시 한편’도 수백편을 쓰는 동안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쓴 것을 성급하게 발표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하고 한편의 시를 위해 투철하게 노력하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사진작가가 수백장 찍은 데서 한 장을 고르고, 도예가도 수없이 구워낸 것들을 다 깨뜨려서 하나의 좋은 작품을 내놓듯이 시인도 고르고 또 골라서, 버리고 또 버려서 한권의 시집을 묶어야 한다.
-미주한인사회에서 시와 시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시인의 역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사람들은 시를 읽다가 울기도 한다. 내 마음을 똑같이 표현했다는 감동 때문이다. 이렇게 작가 자신이 남의 마음에 영향을 주려면 많이 읽고 써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생각이 깊어지면 내가 그들의 마음이 되어 다독이는 작품, 용기와 지혜를 주는 작품을 쓰게 될 것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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