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경우를 당할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앞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설 것인가.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의 주인공 임상옥(任尙沃1779-1855)은 조선 후기의 실존인물이다. 임상옥은 순조 초기의 세도가 박종경의 도움으로 인삼의 대중국 수출권을 독점하고 순조 9년인 1809년 김노경을 진주사陳奏使로하는 사신 일행을 따라서 상단을 이끌고 중국에 가게된다.
19세기 당시 조선의 인삼 값은 홍삼으로 가공한 6년근이 근당 은자 25냥이였다는데 이것을 중국에 가져가면 4곱 정도 이문을 남기고, 또 여기서 받은 판매대금으로 비단이나 벼루 먹같은 고급 문방구등을 사서 가져오면 국내에서 또 3곱 정도 이익을 남겼다고 하니까 당시 임상옥이 인삼 수출의 독점권을 땃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이권을 챙긴것이다.
임상옥의 문집인 가포집稼圃集에 의하면 임상옥 자신은 18세부터 무역 상단을 따라 다녔다고한다. 당연히 중국어 만주어에도 능통했고 중국 상인들의 상술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삼의 종전 가격 그리고 현지 시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상인들의 농간으로 더 받을 수 있는 인삼값을 백여년 동안이나 같은 값에 팔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연경에 도착한 임상옥은 먼저 인삼 값을 종전시세보다 대폭 올려서 공시했다. 어찌보면 먼저 싸움을 건것이다. 당연히 중국 상인들은 반발하고 불매운동으로 맞섰다. 그러면 값을 내리던가 해서 다시 흥정을 해야하는데 임상옥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공시된 값을 계속 유지했을 뿐이다.
중국상인들로 답답할 것이 없다. 조선 상단이 중국에 머믈 기간은 한정되어있다. 인삼을 도로가지고 가지않을 바에는 떠날 때 쯤해서 값을 흥정하려고 할것이다. 그때 값을 후려쳐서 사는 것이다.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인삼값이 공시되면 바로 가격 협상에 들어가고 그리고 며칠이면 인삼을 다 팔수 있었는데 지금은 연경에서 채류한지가 거진 한달이 되는데 객관 문앞에 누가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이제 떠나야할 날도 몇일 남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자존심을 굽혀 구걸을 하면서 인삼을 팔던가 아니면 도로 가져가야한다.
자존심을 굽히면 인삼이야 당장 팔 수는 있지만 그것은 굴욕이다. 이후로 인삼값을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계속 중국 상인들에게 덜미를 잡혀 끌려 다녀야한다. 반면에 인삼을 도로 갖이고 간다면 조선상인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업은 완전히 거덜이다. 그리고 임상옥 개인으로 봐서도 파산이다.
백척간두(百尺竿頭)는 백척이나 되는 장대 위에 있다는 뜻이다.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밑으로 내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가도 죽고 뒤로 물러서도 죽는다. 지금 임상옥의 입장이 그렇게 된것이다. 임상옥은 선택했다. 백척간두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하나. 갱일보(更一步), 한거름 더 나가는것. 죽음(死)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역시 단 하나 필사(必死), 반드시 죽는것. 못팔면 도로 가져갈 것도 없다. 다 태우고간다. 임상옥은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불을 붙힌 다음 가져간 인삼을 불구덩이에 넣기시작했다.
이렇게 되니까 다급해진쪽은 중국상인들이다. 저걸 다 태우고가면 앞으로 수년간 중국에서 인삼을 구경하기 힘들다. 자기들도 인삼이 있어야 약점상에 팔아먹을 것 아닌가. 인삼이 저렇게 잿더미가 된다면 자기들 장사도 끝장이다. 상인들은 임상옥에게 매달렸다. 제발 불을 끄시라고, 그리고 인삼값은 원하는대로 지불하겠다고. 그날 불에 태우다가 남긴 인삼 모두를 태운 금액까지 쳐서 단숨에 팔아 치울 수 있었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은 자기 몸을 태움으로 부처에게 공양한다는 뜻이다. 임상옥에게 인삼이 자신의 모든 것이였다면 인삼을 태웠다것은 바로 자신을 태웠다는것과 같다. 이렇게 자신을 태워버림으로 중국상인들의 불매동맹을 물리칠 수 있었고 그렇게 위기를 극복함으로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조선의 최대 부자 조선의 최고의 상인이 탄생한 것이다.
생명의 기쁨인 有의 존재는 死라는 無를 통해여 얻어진다고 한다. 요즈음은 주위 모두가 어렵다는 말 뿐이다. 임상옥이 지금 여기에 있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려움을 착실하게 품어버려라. 그러면 살아날 방법이 꼭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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