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은 곧 사람…좋은 글은 좋은 생각에서”
작년 한국문학평론상 3관왕 김종회 교수
SF문협 임문자 회장 운영 홀리스터 위비모텔서
문학을 논하고 인생을 말하며 도란도란 2박3일
약 50명 참여… LA 시애틀 메릴랜드 문학인도
소설가 신예선(샌프란시스코 한국문학인협회 명예회장)은 충청도 어느 마을 소녀 시절부터 문학을 앓았다. 일제하, 해방공간, 전쟁통, 그런 것들은 그의 문학앓이를 털끝만큼도 덜어내지 못했다, 도리어 깊게 패이게 했을 뿐. 자연나이 칠순을 넘고 문단데뷔 40년을 넘은 지금까지 그는 문학앓이를 하고 있다, 자판톡톡 컴퓨터시대에 누리끼리 색바랜 원고지를 복사하거나 그도저도 아니면 맨종이에 마음으로 칸을 치고 손가락보다 굵은 몽블랑 만년필을 쥐고서 밤낮을 바꿔 소설 같은 소설인생을 잇고 있다.
그런 그가 그런 자리에 빠질 리 없었다. 더욱이 그 자신이 중심이 돼 수삼년 준비 끝에 11년 전 탄생시킨 그런 잔치 아니던가. 누님에게 감염됐는지 핏줄내림인지 역시 문학앓이를 하고 있는 그의 동생(신해선, 수필가)도 그곳을 찾았다.
낼모레면 팔순이 되는 이임성 박사(산호세 한미봉사회 전 이사장)의 문학앓이는 차라리 ‘몰래한 사랑’이었다. 쓴다만다 내색도 없이 시심이 출렁거릴 때면 문득 일어나 혹은 엎드려 시를 써온 것이 무려 50여년. 그러다 결국 들켰다. 놀란 신 회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영 묻힐 뻔한 그의 남몰래 시들은 팔순 다 돼서야 시집으로 묶여 세상빛을 봤다. 여전히 소년의 미소를 얼굴 가득 담고서 그 또한 그 자리에 나타났다.
산호세에서 101번 하이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20몇마일을 달리다 길로이 언저리에서 25번으로 접어들어 다시 10마일 남짓 가면, 앞뒤로 양옆으로 체리 등 갖가지 작물들이 빼곡한 들판을 끼고 아득히 멀리로 그닥 위압적이지 않은 고만고만한 산들이 완만하고 풍만하게 이어져 보이는 홀리스터, 작지만 뻥 뚫린 이 도시의 간선도로 옆에서 행여 눈치없이 중뿔나게 보일세라 키 똑같은 단층방들만 모여 서로 기댄 채 펑퍼짐한 꺽쇠 모양을 이룬 위비 모텔(Wiebe Motel), 문학을 앓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든 자리는 그곳에서 펼쳐졌다.
늘 거기서 길손들의 쉼터 구실을 해온 그곳에 지난 금요일(7일) 저녁부터 일요일(9일) 오후까지 길손들은 없었다. 목요일 밤을 묵은 마지막 손님이 떠나기도 전에 입구 안내판에 빈방 없음(No Vacancy) 사인이 켜졌다, 2박3일 내내. 그리고 그곳은 예서제서 모인 문학앓이 환자들(?)이 점령했다. 그러므로 그곳은 그 기간만은 숫제 문학병동이었다.
병을 낫게 하려는 병동이 아니었다. 안그래도 심한 문학앓이를 무장 더 덧내려고 차려졌다. 슬로건부터 그랬다. 머리로도 말고 손끝으로도 말고 아예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Writing down the Bones). 강단에서 문단에서 문학앓이 치유는커녕 다니는 곳마다 말로 글로 그 괴질을 넓고 깊게 퍼뜨리는 특급전문가(김종회 경희대교수, 평론가)까지 초빙했다. 때마침 북가주에 와 있는 작곡가 정민선 교수도 문학과 음악의 어울림과 버무림을 위해 강사로 초대됐다.
제12회 샌프란시스코 문학캠프, 그 모임이었다. 대개들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처음에 와 도중에 떠나거나 도중에 와 나중까지 함께한 이들까지 합쳐 대략 쉰 명쯤 참여했다. 문학앓이 그것이 얼마나 독한 괴질인지 그곳에는 북가주 글꾼들만 모인 것이 아니었다. LA발 글꾼들(이성열, 애쉴리 서)은 차라리 가까운 편이었다. 시애틀(이송희)서도 날아왔고 동부 메릴랜드(최영숙)서도 날아날아 찾아왔다.
북가주를 어지간히 꿴다 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홀리스터 그 모텔의 문학동네 변신은 임문자 SF문학인협회장(본보 칼럼니스트) 덕분이었다. 그곳에 살면서 손수 운영하는 임 회장과 부군(현낙영)이 2박3일 문학캠프를 위해 통째로 내줬다. 샌프란시스코보다 산호세가 덥지, 산호세보다 길로이가 덥지, 홀리스터는 길로이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니…. 이런 짐작꼴로 지레 아주 가볍게 차려입고도 더위에 더 녹아날 각오까지 하고서 그곳을 찾은 이들은 거개들 “어머, 시원하네요” 하면서 임 회장 부부에게 두번세번 감사를 표했다.
첫날 저녁식사 뒤 수영장 옆에 모여앉아 오프닝 행사를 하면서 신 명예회장은 “신문에서 이름은 익은데 한인사회에 통 안나와 낯을 익힐 기회가 없었던 임 회장을 불과 몇년 전에 딱 만나보고는 그 인품과 실력에…왜 우린 이제 만났죠? 이럴 수 있는데 모든 만남의 그 시기는 너무 정확한 것, 다 뜻이 있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사뭇 다잡더니 말꼬리를 살짝 “그래 우리 문협 회장을 맡겼더니 이런 일(캠프제공)이 생기잖어?”라는 재치있는 감사표현으로 틀어 수영장보다 몇배 넓은 웃음바다를 출렁였다. 사회를 보느라 곁에 서 있던 엘리자벳 김 수필가는 “임 회장님은 몇년만에 초고속 승진을 했는데 나는 12년동안 문학캠프 준비위원장만 했다”는 애교엄살로 잦아들던 웃음바다가 다시 솟구치게 했다.
밤이 깊어가는 것보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게 빨라졌다. 바람이 먼저 뼛속까지 내려갈 판이었다. 모두들 내실로 옮겼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글쓰기-. 캠프의 주제 얘기는 거기서 보따리가 풀렸다. 첫 생각을 놓치지 마라, 멈추지 말고 써라, 습작을 위한 글감노트 만들기,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사고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려라….
2008년 한국의 주요평론상 3관왕(유심작품상, 편운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종회 교수는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같은 이름의 글쓰기 명저 가운데 88페이지를 뽑아 교재로 쓰면서 체험담과 즉석 질의응답을 곁들여 ‘참다운 글쓰기’ 혹은 ‘바람직한 문학앓이’에 대해 설명했다. 첫날 강의의 고갱이는 “글은 곧 사람, 글은 곧 나”였다. 글쓰기는 특별한 재능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진솔하게 내놓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좋은 글은 좋은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같은 물도 양이 먹으면 젖이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말로 좋은 생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좋은 생각만 한다고 글이 저절로 익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달리기 선수가 생각만 한다고 달리기 실력이 늘지 않는 것처럼, 글쓰기 실력도 쓰고 또 쓰는 가운데 진화하는 것이었다. 교재의 한 챕터처럼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첫날 밤 강의는 벽에 걸린 시계의 눈치가 아니었다면 12시를 넘길 뻔했다. 홀리스터의 문학병동 혹은 문학동네는 다다음날 일요일 오후까지 이어졌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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