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일본 침략의 총칼 앞에서 36년 동안이나 착취와 압박, 굶주림에 시달렸다. 드디어 1945년 8월15일 아침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무조건 항복을 하고 말았다. 그때 내 나이 13세였다. 만주 하얼빈 철도 병원에서 그 방송을 듣고 어머니와 누이들과 함께 얼싸안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지금도 그때의 감격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3년 후 고향 함경북도 주을로 돌아와 학교에 다니던 나는 북한군의 특별 군사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2년이 지난 후 1950년 5월 북한군이 무장한 군인들과 군사장비, 그리고 탱크들을 기차에 실어 삼팔선 남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봤다. 다음달 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폭풍’이라는 전쟁 신호와 함께 전 북한군은 탱크를 앞세워 서울로 쳐 밀고 내려갔다.
나는 1950년 12월25일 18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육군에 지원하여 제23연대 수색중대로 배속 받아 1953년 7월27일까지 일선 전투에 직접 참여하였다. 전투는 비참했다. 적군을 사살하고 육박전을 치르며 무거운 M1 소총을 들고 동상을 입고, 춥고 배고프며 자지 못하고 쉬지 못하는 가운데 철의 삼각지 662 고지 전투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북한 인민군과 싸웠다.
3년의 한국전쟁의 상처로 남한 전국토가 황무지가 되었다. 이후 1953년 7월27일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졌으나 남북통행은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다. 우리 수색 중대원은 156명이었으나 살아남은 자는 겨우 26명에 불과했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의학 공부를 계속하여 의대(수도의과대학)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남한에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미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피나는 노력으로 미국 심장전문 의사가 되었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82년부터 1년간 준비하여 83년 북쪽 내 고향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던 고향산천은 변함 없었건만 어머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3일이면 돌아오겠다던 불효자는 33년이나 지나서 고향엘 찾아왔는데 그리운 어머님은 4년 전인 1979년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이전보다 더 큰 아쉬움만 가슴에 묻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The Three Day Promise’란 표제의 영문판 책이 출판되었다. 그때 미국의 유명한 언론인 디어 에비는 1,200개의 메이저 미국 신문에 이 책을 소개했다. 다음날 미국 각처에서 배달되어 온 격려의 편지는 하루에 5,000 여통이 넘었다. 뿐만 아니라 ‘3일의 약속’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는 책의 판매수익금 전액 50여만달러를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탑 건립에 기증했다.
나는 지난 38년 동안 LA 근교 롱비치 메모리얼 병원 심장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때로는 외로운 이민생활이지만 한국의 눈부시게 발전된 모습을 보며 큰 위로를 받고 있다. 특별히 한국의 첨단 IT 기술과 LG나 삼성, 현대, 기아 등 우리나라의 상품이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갈 때 그 기쁨과 자랑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점심시간 병원 식당에서 미국 의사들과 함께 식사하던 중 미국의 주요 미디어인 FOX와 CNN이 한국 국회 의사당의 난장판을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거기서는 한국의 지성인이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난장판으로 싸우는 모습을 한국의 국회라고 보여주고 있었다.
그 뉴스를 보던 나는 부끄럽다 못해 얼굴을 들 수조차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전에서 흘린 이방인 청년들의 피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다른 연합군 15개국을 제외하고 미국만의 전쟁 피해는 전사자 5만4,246명, 부상자 10만3,248명, 실종자는 8,177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 국회의 추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내는 금쪽같은 세금으로 나라의 발전과 안녕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몸 바쳐 충성해야 할 일꾼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무수한 선열들과 이국땅에서 피 흘린 넋들에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조국해방 64주년을 맞으며 대한민국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정동규 / 의사·‘3일의 약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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