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의 암담한 미래를 섬뜩하게 묘사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빅브라더는 언어를 통해 구성원들을 교묘히 통제한다. 기존의 언어는 조금씩 없애 버리고 새로운 말을 만들어냄으로써 구성원들의 의식을 마음대로 컨트롤한다.
소설 속 사회에서는 ‘사상 죄’라는 말 자체가 사라진다. 사상을 표현할 도구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언어가 인간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어를 통한 조작과 왜곡을 뜻하는 ‘오웰리즘’이란 말이 생겨났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표현한다. 어떤 단어를 들으면 그와 관련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대상을 어떤 말로 부르느냐는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류를 들라면 단연 정치인들과 광고인들을 꼽을 수 있다. 대중의 의식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가 곧바로 그들의 성패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항상 조작의 위험이 뒤따르게 된다.
최근 팀 가이트너 연방재무장관은 금융기관들의 ‘독성 자산’(toxic asset) 처리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것을 ‘이전 자산’(legacy asset)이라고 지칭했다. 독성 자산이란 이름으로는 자산 매각이 힘들다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독성 자산보다는 한결 순화된 표현이지만 그 어휘만 떼어 놓고 보면 선뜻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독성이라는 표현이 풍기는 부정적 뉘앙스는 없고 오히려 긍정적 느낌마저 안겨준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자행된 죄수들에 대한 가혹한 고문에 대해 공화당 정부는 ‘발전된 심문기법’이란 그럴듯한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본질을 흐리려 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냥 잔인한 고문일 뿐인데도 말이다. 점 하나에 님이 남이 되듯 달라진 어휘 하나가 인식을 180도 바꿔놓기도 한다. 특히 정치는 언어로 시작해 언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메시지를 어떤 어휘로 포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정치인들에게 자문해 주는 컨설턴트까지 있을 정도이다.
유가에서는 올바른 명칭 쓰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시 했다. 이른바 ‘정명론’이다. 명칭이 올바르지 않으면 사회 질서가 올바로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반복되는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 무수한 분석들이 있지만 한국의 국가 지도자를 지칭하는 ‘대통령’이라는 호칭부터 문제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통령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대통령으로 번역했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확실치 않다. 프레지던트는 ‘회의를 주재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praesidere’에서 나왔다. 관리자 혹은 중재자의 의미가 강하다. 미국에서는 대통령뿐 아니라 대학 총장, 회사 사장, 단체장 등이 모두 프레지던트다.
흔히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고 권력자라 불린다. 하지만 그런 권력의 행사는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 견제도 확실하다. 프레지던트라는 명칭의 어원과 용례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런데 국가 지도자로서의 프레지던트가 대한민국으로 넘어가면 훨씬 더 절대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통치(統)하고 영도(領)하는 사람으로도 모자라 클 대(大)가 하나 더 붙는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높지만 냉정히 보면 호칭 자체가 이미 제왕적이다.
‘대권’과 ‘대선’이란 어휘도 마찬가지다. 더 강한 것, 더 큰 것에 집착하는 인간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달려드는 것은 대자가 들어간 호칭이 이런 선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대권을 잡은 사람은 대통령이란 호칭에 걸맞게 군림하려 들게 마련이고 나머지는 주눅 들기 십상이다.
국민이 주권을 가진 시대에 어울리는 호칭은 아니다. 시민 사회에 어울리는 말은 없는 것일까. 이것 하나만 살짝 바꿔도 쌍방형 소통이 일상화 되는, 훨씬 겸손한 권력의 출현이 가능해 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셰익스피어는 “장미는 장미라 부르지 않아도 향기롭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름이 본질을 바꾸지는 못해도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에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셰익스피어의 명언보다는 의식을 규정하는 언어의 교묘함을 드러냈던 오웰의 경고가 현실을 읽는 코드로서 더 유용해 보인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