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하늘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Atlas Shrugged)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연방 의회 도서관 자료에 의하면 성경 다음으로 미국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볼셰비키 혁명 후 공산 사회의 실상에 염증을 느끼고 미국으로 망명한 러시아계 유대인 여류 작가 아인 랜드가 쓴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무대는 허구의 미국 사회. 시장 경제와 사유 재산을 존중하던 전통적인 이념은 사라지고 대신 ‘공익’이 최고의 가치로 바뀐다.
고용주는 노동자의 피를 빠는 악당이고 정부는 이들이 부당하게 번 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해 대중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양질의 제품을 싼 값에 만드는 기업가야말로 최악이다. 경쟁사를 도산시켜 실업자를 양산하는 사회악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내는 발명가도 마찬가지다. 대중을 상대로 독점 이윤을 챙겨 혼자만 잘 살겠다는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술은 모두가 공유하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훌륭한 기업은 하나둘 문을 닫고 유능한 기업가, 발명가는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이른바 ‘생산자의 파업’이다. 사회는 극심한 혼란과 침체에 빠진다. 이를 주도하며 “세상을 움직이는 엔진을 세운” 존 골트는 어째서 인간은 스스로를 위해 일해야 하며 개인의 업적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는가를 장장 70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연설을 통해 설명한다.
랜드가 묘사한 사회 분위기가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6.25 이후 지난 50년간 한국은 엄청난 발전을 했다. 경제 규모는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에서 세계 15위권에 들 정도로 커졌고 인천 공항부터 호텔, 백화점 무엇 하나 미국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고속도로가 뚫리고 시골 길이 윌셔 길보다 포장이 더 잘 돼 있다.
한국이 잿더미에서 이렇게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누구보다 기업가의 공이다. 이들이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시장을 개척하고 사막과 열대의 더위와 싸워가며 공사를 해 번 돈으로 국민들이 먹고 살고 그렇게 축적한 자본으로 기술을 개발해 일류 기업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가들에 감사하는 한국민은 본 기억이 없다. 정경유착, 과소비, 노동자 착취 등등을 거론하며 손가락질하기에 바쁘다. 정당한 비판도 있지만 많은 부분 못가진 자의 가진 자에 대한 시샘이 숨어 있다. 모든 사물에는 명암이, 모든 인간에게는 공과 과가 있다. 한쪽 면만 일방적으로 부각시키고 다른 쪽 면을 덮는 것은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에 유독 한국 기업들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IT 분야에서 삼성전자는 D램의 세계 점유율이 37.2%로 1년여 사이 10% 포인트 이상 올랐고 하이닉스도 23.6%로 4% 포인트 뛰었다. 두 회사가 세계 D램 시장을 말아 먹고 있는 셈이다. 독일과 대만의 경쟁사들은 파산하거나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LCD 분야는 삼성전자와 LG의 놀이터이고 현대 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판매가 늘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세계 조선 시장이 한국 기업의 독무대가 된지는 이미 오래 됐다.
이들 기업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 경제가 지난 2개월간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3일 보도했다. 이 신문뿐 아니라 세계 투자 분석가들이 일제히 한국의 앞날을 낙관하면서 투자 자금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 지난 달 아시아 7개국 증시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 중 절반이 한국에 몰렸다.
이번 금융 위기에서 한국이 신속히 벗어난다면 그 공은 제일 먼저 한국 기업의 탄탄한 기술력과 자금력에 돌려야 한다. 결국은 기업이 잘 돼야 근로자들이 대우를 받고 국가 경제가 발전한다. 쌍용차처럼 차가 안 팔리는데 노조는 파업만 하면 노사가 공멸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가끔은 기업인의 노고를 돌아보고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지 않은’ 성숙한 국민이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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