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 어니.”
열린 출입문으로 목단꽃같은 미소를 날리며 들어오는 우리 가게 단골손님 쥰 마이어는 언제나 우리들을 어니라고 부르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등장하곤 한다. 우리끼리 부르는 호칭을 되풀이해 듣더니 어느 날인가부터 우리 모두를 부족한 발음으로 어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이로는 한참 언니인데 자꾸 그렇게 부르는 바람에 우린 모두 60살이 넘은 쥰 마이어의 언니가 되어버렸다. 플로리다에 한 달 묵었다는 그녀는 꽁꽁 모아두었던 세탁물을 산타 보따리처럼 내려놓으며 보고싶었다고 그 큰 덩치를 흔들며 우리들을 한 번씩 껴안아준다. 큰 물고기가 들어온 수조처럼 가게 안이 즐거운 호들갑으로 잠시 출렁인다. 여행지에서 가져온 큰 소라껍질을 카운터보ᇙ 위에 예쁘게 올려놓아 주고 언제나처럼 손 키스를 날리며 옆 가게로 라러리를 사러 가는 그녀, 열린 문으로 그녀가 나가고 그녀가 몰고 들어왔던 상기되었던 공기들도 우르르 그녀를 따라 나간다.
그녀에게는 스물여섯 살짜리 한국인 딸이 있다. 스무 몇 해 전에 홀트를 통해 입양해 온 아이는 추운 기차역 대합실에 버려진 가엾은 기록이 있는 아이였다. 그녀의 지갑 속에는 아이와 처음 찍었던 조그만 사진 하나가 항상 들어 있다. 쥰 아줌마의 튼튼한 다리를 기둥처럼 꼭 붙잡고 있는 아이는 몸집도 작고 눈, 코, 입이 유난히 작아 보인다. 쥰 아줌마는 그 사진을 내보일 때마다 너무 귀여운 내 딸이었다며 뽀뽀세례를 퍼붓기도 한다.
아이의 방황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유난히 작은 눈, 코, 입에 비해 미국아이들이 갖지 않은 큰 귓볼이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만화영화 속의 코끼리 주인공 이름을 따 덤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아이는 걸핏하면 울고 들어왔다. 쥰 아줌마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의 방황을 치마폭에 싸안아보려 노력했지만 아이는 자꾸 빠져나가기만 했다. 마침내 쥰 아줌마는 아이를 성형외과로 데리고 가 귓볼을 줄여주는 수술까지 시켜 주었다. 위태위태하게 자라던 아이는 대학에 들어갔고 지금은 직장인이 되어 있지만 몇 해 전부터 연락을 끊고 집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세탁물을 맡기는 손님이었던 그녀가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면서부터 오며가며 들르는 친한 이웃이 되었다. 문 닫으려던 가게 앞에서 처음 그녀의 딸 이야기를 듣던 날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위로도 될 수 없었고 그저 그녀의 큰 등을 토닥여주며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 후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가게를 들른다. 내가 피곤해 보이면 따뜻한 차 한잔과 쿠키 같은 걸 들고 오기도 하고 여행 끝이나 연말이 되면 꼭 우리 가게 식구들 하나하나에게 작은 선물을 잊지 않는 그녀는 넓은 그녀의 등만큼이나 따뜻한 품성을 지닌 사람이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나라에는 매해 보호를 필요로 하는 1만 명씩의 어린아이들이 생긴다고 한다. 그 중 4천여 명이 입양되어지고 또 그중70퍼센트가 해외입양의 길을 떠난다. 입양되어진 아이들 중에는 아주 잘 자라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은 것 같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낳아준 부모의 사랑을 잘 받고 자라는 아이들 중에도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문명의 변화는 빨라지고 달려가는 변화의 속도에 늘 뒤처지는 기성세대들의 사고는 간혹 신세대 아이들과 부딪혀 크고 작은 다툼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나도 아이들과 입 다툼을 자주 하는 편이다. 어른들에겐 사람 사는 도리나 예절 같은 게 아이들에게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며 구태의연한 의식 정도로 치부되어지고 어른들도 아이들이 사는 숨 가뿐 세대를 향한 이해력이 부족할 것이다.
쥰 아줌마와 딸 사이에도 그런 보이지 않는 다툼 같은 것들이 왜 없었겠는가. 안락한 품에 안겨 있어야 할 시기에 차가운 버림을 당하고 공항에 나간 쥰 아줌마의 품에 안기기까지 아이가 겪었을 행로를 굳이 추적하지 않아도 버려진 아이들이 겪을 두려움의 시간들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아직 인지능력이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은 갓난아기들조차 엄마 냄새를 알아 엄마 품 안에 안기면 단 하품을 내며 잠들고 낯선 품에 안기면 삐죽삐죽 우는 것만 보아도 유아기에 버림당한 기억은 평생을 갈 것이라 여겨진다. 사춘기가 찾아온 작은 몸집의 아이에게 유난히 큰 쥰 아줌마의 덩치라던가 수줍음 많은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쥰 아줌마의 사교적인 성격도 괜한 괴리감 혹은 고립감을 느끼게 해줬을지도 모른다. 딸 이야기만 나오면 훌쩍대는 쥰 아줌마도 가엾고 사진으로만 본 유난히 작은 눈을 가진 그녀의 딸도 안쓰럽기만 하다.
해외입양이 시작된 지 올해로 50년이 되었다. 국민소득 1만불이 넘고 노인인구의 증가와 낮은 출산율 등 선진국형 사회현상 내지는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은 아직도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은 벗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먹을 것이 없어 해외로 내보내지던 전쟁고아들 대신에 미혼모나 이혼가정에서 버려진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오늘도 부모와 조국이 품어주지 못하고 외면한 상당수의 아이들이 낮선 이국땅의 낮선 부모를 향해 비행기를 타고 있다. 그 비행기에 태워 보낸 아이들 대신 낮선 애완동물들을 들여와 한국인의 품에 파고들게 하고 있는 이 시대의 현상은 내 개인적인 시각만으로는 다소 아이러니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인데 뿌리 깊은 혈통주의와 입양에 대한 편견만은 변화의 물결에서 열외로 제쳐져 있는 느낌이다.
그들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다른 외모부터가 슬픔이며 곡절이고 또 고립감일 수 있다. 쥰 아줌마의 딸도 그런 마음의 몸살을 자주 겪었을 것이다. 태어난 나라에서는 감성적이며 복이 많이 붙어 있다고 복귀라고 일컬어지는 도톰하고 예쁜 귓볼을 잘라내면서까지 다름에 상처받고 다름에 도전받았을 그녀, 쥰 아줌마와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난 이유 모를 부채감을 느끼곤 한다.
딸과 닮은 외모를 가진 한국인들의 곁을 서성이는 그녀와 뉴욕 어디선가 긴 머리칼 밑에 복귀를 숨기고 살아갈 그녀의 딸, 또 평생을 추운 기차역에 딸을 버린 주홍글씨를 가슴에 안고 살아갈 친모 역시 가엾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에 버림받는 아이도, 버릴 수밖에 없는 사연도 줄어들길 바라며 어느 저녁, 사는 게 팍팍하고 서러워 떨어지는 석양에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한 저녁,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쥰 아줌마의 딸을 상상해 본다. 너른 쥰 아줌마의 품에 머리를 묻고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는 그녀, 키워준 엄마와의 불화를 용서하고 버린 친모의 곡절을 용서하고 끝으로 방황했던 자신을 용서하는 아름다운 앤딩씬을 그려보면서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