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어린이들이 미국에 와서 처음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오해를 사는 일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교사 앞에서의 태도이다.
뭔가를 잘못했을 때 이를 지적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교사 앞에서 한인 어린이들은 대개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서 있는다. 어른 앞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공손한 태도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아이가 설명을 하려 들면 “누가 어른 앞에서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느냐”고 야단을 맞는 것이 한국적 정서이다.
반면 미국 교사들은 학생의 그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교사로서 묻는 말에 아이가 묵묵부답인 것도 불쾌하지만 특히 눈을 바로 쳐다보지 않는 행동을 미국인들은 참지 못한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거나 뭔가 숨기려고 눈길을 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인 학생들이 많은 LA 3가 초등학교의 미국인 교사들 중 여러 사람이 이런 오해를 했었다고 한다. 나중에 한인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나서야 교사들은 학생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갓 이민 와서 말도 환경도 낯설 때 백인 교사로부터 이런 오해를 받아 학교생활이 어려웠던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가 자라서 교사가 된다면 그는 문화가 다른 이민가정 학생들에 대해 좀 더 이해가 깊지 않을까? 미국식 잣대를 즉각 들이대며 학생을 나무라기 전에 그 문화권의 고유한 정서를 먼저 고려하는 포용성을 갖지 않을까?
그래서 ‘현명한 이민자 출신 교사’는 ‘백인 미국 교사’에 비해 때로 교육적으로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한창 시끄러운 ‘현명한 라티나(라틴계 여성)’ 논란의 패러디이다. 소니아 소토마요 연방 대법관 지명자의 이 말은 오바마 대통령이 그를 지명한 5월말부터 도마 위에 오르다가 이번 주 상원 법사위 인준청문회와 함께 십자포화의 타깃이 되었다.
푸에르토리코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적 주인공이다. 도심의 저소득층 아파트에서 편모슬하에 자라난 그는 어퍼머티브 액션 덕분에 프린스턴과 예일 법대를 나왔다. 그 과정에서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며 소외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으로 겪었고, 그런 난관들을 헤쳐나간 덕분에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이민자 집단, 즉 소수계에게 역경은 운명이다. 어떤 형태로든 차별이나 소외의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힘든, 그러나 풍성한 경험 덕분에 “‘현명한 라티나’는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한 ‘백인 남성’에 비해 나은 판결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고 그가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 2001년 버클리에서 히스패닉 법대생들과 법조인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한 연설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만 것이었다.
성공한 한인 2세들이 커뮤니티 행사에 오면 으레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족적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명한 라티나’ 발언은 사실 소토마요가 그의 법조계 대선배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의 말을 뒤집은 것이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된 오코너는 자기 자신을 ‘여자’ 판사로 보지 않는다고 종종 말했었다. ‘여자’라면 일단 무시하고 들던 당시 시대 풍조의 영향이었다. 그래서 나온 오코너의 유명한 말이 “현명한 나이든 남성이건 현명한 나이든 여성이건 판사라면 똑같은 결정에 이를 것이다”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소토마요는 ‘백인 남성’ 판사와 똑같은 것을 넘어, 더 나을 수 있다며 발언 수위를 한 단계 더 올려놓았다. 문제는 그가 단순히 ‘여성’ 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라티나’라고 지적함으로써 ‘인종’까지 끌고 들어간 것이었다. 보수진영은 ‘여성’은 뒤로 하고 ‘인종’을 도마 위에 올리면서 판사로서 그의 법적 공정성이 의심되는 위험한 인종적 발언으로 공격했다.
소토마요 케이스는 한인사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인 2세들이 앞으로 이런 일을 겪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민 2세는 양다리 생활이 불가피하다. 주류사회에서 성공하는 한편으로 동족 커뮤니티에서도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대외적으로 양쪽 사회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이 미국에서 소수계로 살아가는 지혜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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