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시인)
사시사철, 추자도에는 언제나 바람이 심하다. 가을의 아들 추자도, 목포항에서 제주항으로 가는 배를 타면 아무리 좋은 날이라도 선체가 흔들리는 지점을 통과한다. “추자도를 지나네” 제주도와 내륙을 몇 번이고 다니던 사람은 눈을 감고도 추자도 근처를 지난다는 것쯤은 다 안다. 대한반도의 동서를 왔다 갔다 하는 바다의 조류가 제주와 목포의 중간지점쯤 되는 추자도 바다
를 거쳐 왕래하기 때문에 추자도 근처의 바다는 언제나 파도가 높기 때문이다. 자생하는 가래나무도 없는데 추자도를 왜 가래나무 섬이라고 했을까? 최영 장군이 제주도에서 일어난 난을 평정하고 돌아가다 심한 바람과 풍랑을 피해서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가래나무 섬이란 이름을 왜 후풍도라고 또 바꾸어 달았을까? 추자도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내려놓고 섬도 그 품계가 높아지고 싶었을까?
추자도는 일년 내내 쉬지 않고 심하게 부는 바람에 시달려 겉살이 모두 깎여서인지 경사가 급한 곳이 많다. 그래서인지 평지에서 길 들여진 새는 이곳을 찾지 않고 바람을 이용해서 이착륙을 하는 슴새만이 이 섬에 가득하다. 슴새는 무뚝뚝하다. 추자도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깊은 수심(水深)에 강한 해류, 오염을 시키려야 오염이 되지 않는 청정지역이라 사람들도 맑다. 아무리 해산물경작이 어려워도 이곳 사람들은 슴새처럼 무뚝뚝한 묘기를 가지고 해 낸다. 나는 추자항의 야경 거리를 걸으면서 무엇이 추자도 사람들을 강인하게 만들어 놓았나 하는 이유를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렸으나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바람이었나 보다 하는 막연한 생각을 끝으로 상 추자도와 하 추자도를 연결하는 긴 다리로 눈길을 옮겼다.
어제 다녀온 하 추자도의 자갈 해수욕장, 신기했다. 모래는 없고 계란 만한 둥근 자갈이 뒤덮인 여러 색깔의 해변가가 신기했다.해수욕장 하면 으레 모래사장이 바다를 막고 누었을 거란 생각이었는데 그 고정되었었던 관념이 다 무너지고 있었다. 계란 만한 자갈들이 자진해 모여서는 소곤소곤 속삭이며 그 무게를 아낌없이 풀어놓고 바람에 밀려갈 듯한 이 해수욕장을 버텨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맨발로 자갈 위를 더듬거리며 걷다가 돌아왔다. 벼랑 어디엔가 앉을만한 자리가 있어도 그 곳은 날카롭게 날을 세운 바위일 뿐인데도 슴새는 맨발이었고, 기를 쓰고 육지로 기어오르려는 바닷물도 흙 묻은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벗어버리고 깨끗한 맨발로 끊임없이 상륙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그 물은 티없는 맑은 물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사 십 여 년을 살았지만 이만큼 깨끗한 물을 본적이 없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자주 가는 대형식품점에 들려 추자도에서 생산하는 추자도 이름의 미역이라던가 추자도 이름의 김, 또한 추자도에서 잡아 올린 생선이 없는가 하고 식품이 놓인 선반을 샅샅이 뒤져볼 생각이다.추자항에 모여드는 아낙들은 옛날의 아낙이 아니었다. 60년대, 목포에서 떠나는 여객선이 제주항에 닿으려면 적어도 8시간은 흔들리는 항해를 했는데 지금은 3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니 아무런 족보도 없이 육지로 불어닥친 현대성 문명이란 것들도 급행의 속도로 운반되어 추자도로 밀려들었을 것이다. 자연은 현대화만을 청사진으로 내어놓는 농촌이나 소도시, 심지어는 섬의 현대화정책을 반가워
하지 않는다. 현대화 되어가고 있는 추자도의 울긋불긋한 색깔들은 옛날의 추자도인 거친 바람의 색깔이 아니었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관광자원을 돈을 들여가며 파괴하는 관광정책은 관광객의 발길을 막는 실패한 관광정책일 뿐이다.
문밖을 나가기만 하면 지천인 바다생선을 석쇠에 굽거나, 얼큰한 찌개로 상위에 올려놓고 “어두일미”라 하면서 대가리만 먹으려드는 옛날 방식의 어머니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웬만한 젊은 여인들은 많이 변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이기주의로 변했다. 어두일미란 말은 분명 초라한 밥상에 둘러앉은 자식들 앞에서 어머니들이 지어낸 말일 것이라고 믿고 사는 내 앞에서 요새 어머니들은 대가리를 미리 뚝 잘라 옆으로 밀어놓고 등살만 먹는다. 바람소리가 들린다. 가다가 잠시 들려 놀다가는 소리가 아니라 아무 데고 털썩 주저앉아 옛날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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