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존엄사 케이스로 지난 달 인공호흡기를 떼었던 김 모 할머니가 안정적 상태에서 자발적인 호흡으로 거의 한달 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병원 측이 잘못된 처치를 해 온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환자 가족들은 병원을 상대로 과잉진료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이다.
김 할머니에 대한 처치는 한국에서 최고수준을 자랑한다는 이 병원 의료진의 냉철한 의학적 판단에 의해 이뤄져 왔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모든 결정이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애정 어린 고뇌의 결과였을지는 의문스럽다. 병원 진료 현실 등에 비춰볼 때 다분히 기계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병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은 한동안 의료진의 조치와 판단에 뭔가 미진한 느낌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 “의료진이 며칠만 일찍 수술을 서둘렀다면…” “의사가 환자의 초기 증세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등등 아쉬움이 쉬 가라앉지 않는다. 이것이 의료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의료진과 환자 측 사이의 심각한 정보 비대칭 때문인지 대부분의 불만은 유야무야 돼 버리고 만다.
의학사 연구자들에 따르면 서양의학이 환자에게 정말 도움이 되기 시작한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우연히 선택된 환자가 우연히 선택된 의사에 의해 건강회복의 도움을 받을 확률이 50%를 넘게 된 것은 1910년 무렵부터라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그 전까지는 의사들이 환자들의 건강에 득보다는 해가 되었다는 말이다.
20세기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눈부신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환자로서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센터’가 전국 4,800여 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심장병 및 폐렴 환자 사망율과 재 입원율을 보인 병원이 수백 개에 달했다. 상당수 병원에서 적절한 진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사 결과를 들어 일부 의료개혁 주창자들은 “병원에 대한 보상이 진료 건수가 아니라 환자 회복 실적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건성건성 환자를 보는 병원과 의료진은 점차 도태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진정으로 ‘환자 프렌들리’한 의료개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사람 목숨을 다루는 일을 하는 의사도 사람이다. 그렇기에 간혹 판단의 오류를 범해 환자를 위태롭게 한다. 오진 사례를 분석해 보면 80% 정도가 휴먼 에러이다. 테크니컬 오류는 20%에 불과하다. 많이 봐 온 케이스라며 쉽게 결론을 내렸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하고 환자에 대한 개인적 호감 혹은 비호감이 의학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국 의료의 질은 이런 오류를 얼마나 줄여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공자님 말씀 같지만 그래서 의사와 환자간의 대화와 감정교류가 중요하다. 독특한 시각이 번득이는 책 ‘블링크’에 소개돼 있는 웬디 레빈슨의 연구사례는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레빈슨은 수백명 의사들과 환자들 간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후 분석 작업을 했다. 절반은 의료소송을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는 의사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두 번 이상 소송을 당한 의사들이었다.
분석 결과 우선적으로 대화 시간에 차이가 있었다. 전자 그룹은 평균 18분30초 대화를 나눈 반면 후자는 15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화의 방식이었다. 전자 그룹의 의사들은 “우선 진찰을 해 보고 문제를 얘기해 봅시다” “나중에 질문할 시간을 충분히 드릴께요” 등의 말로 환자들을 안심시키고, 환자들이 얘기할 때는 “계속 하세요. 그 얘기를 좀 더 해 주시겠습니까”라며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레빈슨은 두 그룹 의사들이 제공한 정보의 양과 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자명하다. 환자와의 대화를 중요시하는 의사들의 치료효과가 훨씬 높고 오진률도 낮다는 것이다.
모든 의사들이 ‘환자 프렌들리’하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의사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때는 환자들이 똑똑해야 한다. 괜히 의사의 권위에 주눅 들어 물어 볼 말, 할 말 제대로 못하면 자기 손해이다. 환자들에게는 의사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정확히 알아채는 직감이 있다. 아니다 싶으면 곧 바로 의사를 바꾸는 것이 좋다. 건강은 순간의 불편함을 피하는 일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개혁은 궁극적으로 진료실에서 소독약 냄새만이 아닌, 사람 냄새가 나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뤄져 나가야 한다. 이런 작업은 정치인들뿐 아니라 똑똑한 환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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