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쿠킹 클래스 ‘20대 한인 원장’ 티나 로저스
요즘 젊은이들에게 셰프는 선망의 직종이다.
물론 이 직업 앞에 ‘스타’라는 타이틀이 붙었을 때 말이다. 바비 플레이, 제이미 올리버, 레이첼 레이, 고든 램지 등 유명 셰프들은 더 이상 요리사가 아닌 할리웃 스타들과 같은 연예인이 돼 자신의 TV쇼 호스트를 하기도 하고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학교를 중퇴하고 혹은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요리학교를 가서 셰프가 되고 식당을 오픈 한다. 한인 2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요즘 LA나 뉴욕 등에서 떠오르는 셰프들 중 한인들의 이름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꼭 스타 셰프가 아니더라도 유명 식당 혹은 호텔 레스토랑 셰프들 중에서 한인의 수가 적지않을만큼 패기만만한 한인 2세 셰프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여기 남성들만이 빼곡한 한인 셰프 리스트에 어여쁜 아가씨 한 명을 더 추가시켜야 할 듯 싶다. 유명 주방용품 전문점 설라 테이블(Sur La Table)이 운영하는 쿠킹 클래스의 티나 로저스 원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탈리안 아버지와 한인 어머니 에서 태어난 티나씨는 유명 식당 셰프로도 요리학교 교수로도 성공한 요식업계의 팔방미인이다. 이 다재다능한 아가씨를 지난주 여름 햇볕 따가운 어느 오후 그로브 내 설라 테이블 주방에서 만나봤다.
설라 테이블 쿠킹 클래스 원장 티나 로저스씨가 그로브 몰 내 위치한 설라 테이블 키친에서 포즈를 취했다. 유명 식당 셰프에서 르 코르동 블루 교수까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녀이지만 그녀의 요리는 소박하면서도 어머니의 식탁을 닮았다.
# 원더우먼, 요리와 사랑에 빠지다
처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놀라게 된다. 우선 보는 순간 이름으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혹 한인이 아닐까’ 싶을 만큼 외모 상으론 완벽한(?) 한국사람이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어보면 어머니가 한인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그리고 그녀의 타이틀. 현재 그녀는 설라 테이블 쿠킹 클래스의 ‘원장님’다. 그러니까 이곳의 총책임자인 셈인데 이제 겨우 20대 후반인 그녀가 그녀보다 나이 많은 강사들을 진두지휘 한다는 게 처음엔 의아했지만 그녀의 요리 경력이 10여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다 다시 바로 그 ‘경력 10년차’라는 대목에 이르면 또 깜짝 놀라게 된다.
“고교 졸업 후 바로 요리학교에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유명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리츠 칼튼이나 파티마 그룹 등에서 일했죠. 학교에서 공부하랴 일하랴 당시엔 하루 2~3시간도 못 잤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 한창 배울 때 유명한 셰프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게 제겐 행운이었죠.”
그녀의 일 욕심은 여기서 끝나질 않는다. 요리학교를 마치고는 패션 스쿨인 FIDM에 입학한다. 요리사가 웬 패션 스쿨?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키친 인테리어를 공부했다.
“좋은 요리사가 되려면 당연히 자신이 일하는 공간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부엌을 설계하고, 배치하고, 동선을 확보해야 되는지 공부한 것이 요리사로 일할 때도 학교에서 교수로 가르칠 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셰프·교수… 한식 전도사…
한인 어머니 둔 경력 10년차
패션 스쿨·경영학 등 섭렵
“나만의 요리 만들고 싶어”
# 독해야 살아 남는 세계
직종도 틀리고 나이도 틀리고 성별도 틀리지만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같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선 잠자는 시간은 물론 개인시간까지 반납하고 일에만 몰두한다는 것이다. 티나씨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열여덟에 처음 요리를 배운 순간부터 지금까지 10년간 한번도 맘 편히 쉬어 본 적도, 자본 적도 없단다. 학생 때는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식당 일을 했으니 말 그대로 주경야독이었고, 전업 셰프가 됐을 때도 공부를 손에 놓칠 않았다. 그러다보니 10년간 직업이 2~3개는 기본이었다고.
“아마 엄마의 영향이 컸을 거예요. 한국사람들 특유의 근면, 성실함 그리고 끈기를 강조하셨죠. 그래서 어려서부터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법을 배웠던 듯 싶어요.”
그래서일까. 셰프 경력 10년이라곤 하지만 그녀의 이력서는 화려하다.
요리학교 외에도 그녀가 다닌 학교만도 3곳이 넘고 요리 외에도 그녀는 영양사 자격증에 식당 경영학까지 레스토랑 주방과 요리에 관련된 모든 공부를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식당 역시 클레임 점퍼, 코너스 베이커리 같은 대형 체인에서부터 파티마 그룹, 리츠 칼튼 등 유명 식당에서도 셰프로 때론 트레이너로, 수석 매니저로 근무했다.
설라 테이블에 오기 전에 패사디나의 유명 요리학교엔 ‘르 코르동 블루’의 교수를 역임했다. 물론 그 학교에서도 그녀는 최연소 교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그녀가 왜 그 안정된 직장에서보다 더 규모가 작은 설라 테이블로 옮겼을까.
“나만의 요리 클래스를 운영해 보고 싶었어요. 코르동 블루는 그 학교만의 커리큘럼이 제시되기 때문에 교수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러나 이곳에선 제가 원하는 대로 커리큘럼을 짜고 레서피를 만들고 원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죠.”
# 한식은 내 요리 영감의 원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뭘까. 이 질문에 그녀는 주저 없이 밥과 김치라고 대답한다. 이탈리아 작은 시골마을에 가 1년간 살만큼 아버지 나라인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데다 그녀의 파스타 요리가 워낙 특별해서 당연히 이탈리아 음식이 아닐까 싶었는데 웬걸. 매일매일 그녀의 저녁 식단은 한식이라고 한다. 게다가 시간만 나면 한인타운 식당에 와서 한국음식을 먹을 만큼 그녀의 한식 사랑은 유난하다.
“어려서 매년 이모랑 외할머니, 엄마와 함께 뒷마당에서 김치를 담갔어요. 김치뿐 아니죠. 저녁식사는 한식으로 했으니까 김치찌개며 된장찌개, 각종 밑반찬까지 한식을 먹고 자란 덕분에 지금도 저녁식사론 늘 밥과 김치가 없으면 큰일납니다.(웃음)”
이런 그녀의 별난 한식 사랑 덕분에 코르동 블루에서도, 현재 설라 테이블에서도 그녀는 김치를 비롯 다양한 한식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그 레서피는 그녀 어머니에게 전수받아 그녀가 보강하고 개발한 것들이다.
이처럼 요리라고 하면 아직도 신이 나고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그녀에게 왜 하고 많은 직업중 요리사라는 직업을 택했냐고 하자 기대와는 달리 금새 대답을 못한다. 좀 시간이 흘러서야 그녀, 입을 뗐다.
“1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셰프가 되겠다는 이들이 많지 않았어요. 셰프라는 직업이 겉으론 어떨지 몰라도 중노동인 직업인데다 남들 다 쉬는 할러데이에도 일해야 하는, 어찌 보면 젊은이들한테는 잘 맞지 않는 직업이었죠. 그래서 코르동 블루에서 가르칠 때도 보면 겉모습이 그럴듯해 보여 등록한 학생들 중 상당수가 중도 탈락해요. 특히 여학생들의 탈락률이 높습니다. 물론 그래서 엄마도 제가 요리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땐 많이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전 요리할 때 그냥 무작정 몰입할 수 있어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요리를 하는 그 순간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내가 하는 이 요리를 누군가 맛있게 먹을 걸 생각하면서 행복해 했던 것 같아요. 대답 치고 너무 시시한가요? (웃음)”
아마도 그녀에게 요리는 10년 전 돌아가신 엄마 대신이며 여전히 삶의 전부를 걸어도 좋을 무지개 저 너머의 꿈처럼 보였다.
지난달 파더스데이 특별 이벤트로 열린 키즈 클래스에서 티나씨가 직접 요리법을 가르치고 있다.
더 그로브 내에 있는 설라 테이블 쿠킹 클래스에서는 유명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레서피와 요리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글 이주현·사진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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