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년반 전인 2005년 11월 한 한인은행이 주당 10달러에 2,000만달러를 증자키로 하고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청약을 받았다. 당시 이 은행의 주식청약 설명회에는 200명이 넘는 한인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는데 청약 열기가 워낙 뜨거워 일반 투자자 대상 목표액인 1,000만달러를 초과, 반나절 만에 1,600만달러가 청약됐다. 주식을 사지 못했던 수십명의 한인들이 은행측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사람들이 워낙 몰리면서 청약 한도액이었던 2만주(20만달러)의 50%~75%만 허용했다”며 “결국 증자는 2,200만달러에 마감했지만 청약 요청을 모두 수용했더라면 증자 규모는 3,000만달러가 훨씬 넘었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지난 6월26일 연방 감독당국에 의해 강제폐쇄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진 미래은행의 2005년 당시 증자 상황이다. 이때만 해도 한인은행들은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부동산과 주식 시장 호황, 한국 자금 유입, 저금리 기조 등에 힘입어 자산 규모가 매년 2~3배씩 초고속 성장하던 시절이었다.
한인 투자자 사이에 은행 투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신규 은행이 간판을 올리거나 기존 은행이 증자를 한다고 하면 뭉칫돈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2000년대 들어 제2의 한인은행 설립 붐이 일었고 2001년 11월 유니티은행을 시작으로 2002년 7월 미래, 2003년 9월 태평양, 2005년 3월 커먼웰스 비즈니스, 2005년 6월 FS제일, 2005년 7월 아이비, 2006년 9월 US메트로 등 신규 한인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문을 열었다. 샤핑센터에 빈 공간이 생기면 은행 관계자들이 서로 지점을 열겠다고 달려들어 건물주가 피해 다녔고 경험이 좀 있다는 은행원은 쏟아지는 채용 오퍼 속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시기였다.
미래은행이 설립된 지 불과 7년만에 문을 닫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역사상 최악이라는 경기침체의 심각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무리한 성장전략을 추진하면서 은행의 경영·감독 시스템이 성장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경영진과 이사진의 공동책임인 여신 관리에도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미래은행은 이번 경기침체에 따른 첫 희생양이 된 한인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류사회 진출’이라는 명분 아래 이란, 유대인, 아르메니아 등 타민족에게 집중적으로 대출된, 미래은행 규모의 은행으로서는 할 수 없는 4,000만달러에 달하는 대형 론들이 줄줄이 부실화됐고 경기침체 속에서 감독국의 3,000만달러 증자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면서 문을 닫은 것이다.
올해 들어 감독국 감사의 칼날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탑 20위권 전국 은행들은 ‘대마불사’룰의 적용이라도 받지만 미국 내 8,000여개 은행의 9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자산 3~5억달러 이하의 소형 커뮤니티 은행들은 자본비율이나 부실대출이 규정에 못 미치면 가차 없이 폐쇄된다.
미래은행의 몰락이 한인 언론의 집중취재 대상이 됐지만 감독국은 올해 52개 소형 커뮤니티 은행을 강제 폐쇄했다. 지난해의 25개, 2007년의 3개와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세다. 한인들은 또 다른 한인은행인 윌셔은행이 미래은행을 인수했고 예금주 피해도 없어 불행 중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래은행의 몰락으로 한때 주당 15달러까지 호가했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11명 이사와 450명 소액주주들은 허탈감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미래은행이 지금까지 4번의 증자를 통해 한인사회로부터 조성한 자본금 규모는 4,400만달러에 달한다.
경제적 피해 뿐 아니라 한인들의 한인은행에 대한 신뢰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피해이다. 미래은행 폐쇄로 ‘한인은행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한인은행 불패론도 깨졌다.
경제적 피해규모로만 따진다면 92년 4·29 폭동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인재(人災)다. 한인사회는 4·29 폭동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주류 정치참여 및 한인사회 단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않는 민족은 역사를 되풀이 한다고 했다.
4,400만달러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한인 은행업계, 나아가 한인사회가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2등도 아름답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조환동/ 경제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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