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적인 이미지의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불법체류자를 구제하는 대규모 이민개혁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만연한 기대가 이민자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사실 이민자에 유리한 그런 저런 이민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었다는 단편적인 뉴스도 드물지 않다. 더욱이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의회 인사들과 이민 개혁을 논의하는 비공개 회동을 갖고, 이민개혁이 자신의 주요 정책과제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가까운 장래에 불법체류자 구제를 담은 이민개혁안을 내 놓고 이것이 입법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 오바마 행정부 앞에는 이민개혁안보다 더 중요한 사안들이 많다. 언제 회복될 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가 그렇고, 의료 개혁안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책과제이다. 그 뿐 아니라 이락, 아프카니스탄, 북한 같은 국제 문제도 시간을 다투는 난제들이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이민 개혁안을 추진할 형편이 못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민법집행과 관련된 일부 정책을 손질했다. 우선 불법체류자 단속의 초점을 바꿨다. 부시 행정부 말기에는 불법체류자들을 단속한다는 미명으로 ICE 요원이 직장까지 쫓아가 불법체류자를 체포, 추방재판에 넘겨 원성을 샀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불법고용의 책임을 주로 고용주에게 묻는 방식으로 접근법을 바꾸었다. 오바마 행정부 사람들은 고용주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뿌리 채 뽑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국토안보부 ICE는 고용주가 직원 채용과 관련, 이민법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중점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사실 과거에도 직원을 채용하면서 업주들이 폼 I-9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을 때는 행정 처벌을 했다. 그런데 최근 ICE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불법체류자를 채용한 업주를 불법체류자 은닉죄로 형사고발하는 일도 적지 않다. 불법고용을 적발하기 위해서 ICE는 정보원을 풀어서 정보 수집을 하는가 하면 전화 도청 같은 새로운 수사기법도 동원하고 있다. 또한 ICE는 IRS나 SSA같은 다른 연방 기관 그리고 주정부나 지방경찰의 도움을 받아서 불법고용 업체를 수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연방노동부는 단기전문직 인력(H-1B)을 쓰는 기업들이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 관련 업체의 특별 감사를 늘리고 있다. 연방 노동부가 주목하고 있는 사항은 첫째, H-1B 직원에게 급료를 제대로 지급하고 있는지와 둘째, 고용주가 H-1B 신청서류를 제대로 보관했는지, 그리고 세째, H-1B 직원들이 노동부에 사전 보고한 근로 조건에 맞게 일하고 있는지 등이다.
한편 오바마 행정부는 합법 이민은 신속 처리하는 대신 심사는 더욱 철저히 하고 있다. 한동안 중지되었던 취업이민청원서(I-140) 심사에 급행서비스를 재도입하는가 하면, 이민사기를 단속하는 전문요원들을 대거 채용해, 접수된 이민서류를 더욱 정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2005년에 도입된 노동심사 과정의 펌(PERM)도 도입 초기에는 일정 틀에 맞는 붕어빵 스타일의 케이스는 일주일이내에 승인을 해 주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과정만 6개월이 넘게 걸린다. 전문직 단기 취업비자 (H-1B)도 최근 들어 까다로워졌다. 이민국은 또 데이타 베이스 시스템을 손질해 회사별로 접수한 이민 케이스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 케이스를 접수한 작은 업체들은 일자리가 실제로 없는데도 영주권을 받을 목적으로 서류를 제출한 것이 아니냐는 이민국의 의심을 살 수 있다.
당분간 불법체류자에게 유리한 이민법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얼어붙은 노동시장의 영향이다. 미국 경제가 나빠지고, 실업률이 올라가면서, 미국 노동시장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말은 결국 노동시장에서 불법체류자가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말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입법을 통해서 불법체류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의견은 여론의 호의적 반응을 얻기 힘들다. 불법체류자를 구제하는 이민개혁안은 경제가 다시 살아나서 노동 시장이 구인자 마켓에서 구직자 마켓으로 바뀌는 2011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본다.
김성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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