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담소하는 자리에서 희대의 폰지사기꾼 메이도프가 150년형을 받은 것이 화제에 올랐다. 출구가 전혀 없는, 그래서 결말이 뻔한 수법으로 사기를 쳐 온 메이도프가 어떻게 그렇게 오랜 기간 똑똑하다는 투자가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는지에 분분한 의견과 분석들이 오갔다. 나스닥 위원장 출신이라는 메이도프의 과거 이력이 만들어낸 후광효과와 숫자로 확인되는 투자수익 앞에서 모두의 눈이 멀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하지만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가장 먼저 메이도프 펀드의 사기성에 경고음을 울렸던 사람은 해리 마르코폴로스라는 증권전문가였다. 그는 지난 2000년 메이도프 펀드 수익률을 분석한 후 “메이저리그에서 9할5푼 타율을 기록하는 것과 같은, 있을 수 없는 실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는 증권 감독 당국에 편지를 수차례 보냈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묵살됐다.
마르코폴로스 뿐 아니라 지난 2004년 증권거래위원회의 한 여성 변호사가 메이도프 펀드가 수상쩍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워싱턴포스트가 3일 보도했다. 보고서를 받은 상사는 이것을 묵살했으며 얼마 후 상사는 메이도프의 조카와 결혼했다. 결과적으로 적에게 중요한 정보를 넘긴 꼴이 돼 버렸다.
650억달러의 피해를 낸 메이도프 사기는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다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온 스캔들이 아니다. 적지 않은 경고음과 위험 징후가 있었다. 다만 대박의 환상에 매몰된 투자가들과 당국의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재앙과 실패는 하루아침에 들이닥치는 게 아니다. 대개는 그 전에 무수한 전조가 있게 마련이다. 미국의 보험회사 통계전문가였던 H. 하인리히는 수천 건의 노동재해들을 분석한 후 1건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같은 원인으로 일어나 소형 사고가 29건 있었고 사소한 징후는 300건 발견됐다고 밝혔다. 여기서 ‘1대 29대 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이 만들어졌다. 지난 1995년 일어난 삼풍백화점 참사는 국제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하인리히 법칙의 대표적 사례이다.
하인리히 법칙의 유용성은 산업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와 기업 경영은 물론 가정에서도 하인리히 법칙이 작용한다. 멀쩡해 보이던 기업이 어느 날 무너진다. 갑작스런 몰락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오랜 시간에 걸쳐 균열과 붕괴가 진행돼 온 것이다. 지난 주 한인사회를 뒤흔들었던 미래은행의 몰락도 위험의 징후와 전조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결과이다.
하인리히 법칙이 던져주는 교훈이 무시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공 스토리의 전파성이 빠른 것과 달리 실패는 잘 전달되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도성이 낮은 것이다. 다른 이의 성공을 모방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실패는 그저 남의 일로만 치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조직 내에서는 작은 실패들이 윗사람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다. 윗사람 심기를 헤아리고 실패로 받게 될지 모를 질책을 회피하려는 아랫사람의 계산 때문이다. 실패는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 아니라 그저 감춰야 할 그 무엇이 돼 버린다. 그러는 사이 조직은 조금씩 붕괴되고 커다란 실패가 싹트기 시작한다.
이명박 정부가 ‘근원적 처방’을 언급하며 중도와 서민을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근원적 처방은 이념의 좌표나 서민 우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이명박 정부는 무엇보다도 실패의 전도성을 높이는 일에 힘쓸 필요가 있다. “나는 다르다”는 오만한 자세를 버리고 전임 정권들의 실패에서 배우려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또 참모들을 닦달해 주눅 들게 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더 큰 실패를 막는 일은 작은 실패를 보고하고 지적하는 내부의 소통에서 시작된다.
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설마…” 라는 의식이다. 이런 안이한(좀 더 들어가 보면 회피의 성격이 강한) 의식은 300개의 사소한 징후와 29건의 작은 사고를 정말 사소히 여기게끔 만든다. 그러다 결국 재앙으로 이어진다.
물류업체인 페덱스는 문제를 회피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를 확실히 깨닫고 있는 기업이다. “문제가 생길 경우 즉시 고치면 1의 원가가 들지만 책임소재를 두려워해 숨기면 10의 비용이 들고 이것이 고객의 불평불만으로 이어지면 100의 비용이 든다”는 경영철학이 그것을 보여준다. 소통만 이뤄져도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은 피할 수 있다.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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