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택시 기사들은 불친절하다”가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돈 내고 택시 타면서 잔뜩 구박만 받고 내린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서울에 갔을 때는 뭔가 달랐다. 택시기사들이 대단히 친절했다. 친절할 뿐만 아니라 몇몇 기사에게서는 말과 행동에 기품이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한번은 기사가 길을 몰라서 서울의 외곽을 한참 헤맨 적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서울의 가족들에게 하니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조기퇴직,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중년의 가장들이 직장을 구할 수 없어 택시기사로 몰린 탓이라는 것이었다. 아주 점잖은, 그러나 길을 잘 모르는 ‘변종’ 기사들은 그렇게 한 부류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나이 50 넘으면 ‘취직은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50대를 훌쩍 넘어 60대 중반까지 현역으로 일하는 것을 한국의 동창이나 친구들은 가장 부러워한다. 채용, 승진, 해고 등에서 나이를 근거로 차별할 수 없게 한 미국의 노동법, 그리고 나이에 민감하지 않은 미국의 사회 분위기가 그 배경이다.
그런데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미국의 취업시장은 악화일로이다. 지난 5월 기준 미 전국 실업률은 9.5%, 캘리포니아는 11.5%이다. 통계가 나올 때마다 따라붙는 것은 ‘몇십년만의 최악’이라는 수식이다.
시간이 갈수록 구직 인구는 늘고 일자리는 줄어드니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있다. 한인타운에서도 두어 명 채용하기 위해 광고를 내면 수십통의 이력서가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취업이 이렇게 ‘좁은 문’이 되면서 호경기에는 별 문제없던 ‘나이’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몇년전 가끔 전화를 하던 독자가 지난주 아주 오랜 만에 전화를 해왔다. 남편과 사별한 후 비즈니스에 손댔다가 실패하고 지금은 어느 식당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이 나이에 일자리를 찾으려니 정말 힘들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57세이다.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하면 꼭 묻는 말이 ‘실례하지만 나이는?’이에요. 나이를 말하면 당장 나오는 말이 ‘지금 바쁘니 나중에 연락할 게요’이지요. 그리고는 그만이에요”
젊은 사람 못지않은 체력,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친화력, 경험에서 얻은 삶의 지혜 등 장점들이 있는데 나이라는 숫자 하나로 모두가 무시되는 것이 섭섭하더라고 했다.
나이든 직원을 우대하는 업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인타운 한 대형 소매업체의 경우는 직원들의 대다수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이다. 젊은 직원들은 툭하면 이직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결근이 잦은 반면 중년의 직원들은 성실하고 꾸준해서 안정감이 있다고 업체 측은 설명한다.
그렇기는 해도 대체로 중년의 나이는 취업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국적 정서로는 상사가 나이든 부하직원을 불편해하고 고용주는 나이든 고용인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런 맥락에서 가장 불리한 연령대는 50대이다. 당장 상황이 어려워도 30대, 40대는 큰 걱정이 없다. 취업 기회가 많다. 그리고 60대라면 웰페어에 기대를 걸어볼 수가 있다. 하지만 50대는 은퇴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취직하려면 나이가 부담이 되는 애매한 시기이다.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50대 초반의 한 남성은 “지금 48살이나 49살만 되어도 나을 것 같다”고 했다. ‘4’자와 ‘5’자의 감이 다르다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50대 어르신’이라고 불릴 나이이고 보니 그 무게감에 스스로 주눅 들고 자신감이 없어진다고 했다.
나이에 맞는 대우를 받으려면 아주 특별한 경력이나 전문기술이 있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그래서 평범한 직종이라면 “활력 넘치고 컴퓨터 기술도 앞서는 젊은 세대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암만 봐도 길이 안보여 밤잠을 못 잔다”.
50대는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 같은 시기다. 지금까지 달리던 그대로 달리면 곧 결승점(은퇴)에 도달하려니 하면서,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마나 자조적이 되면서, 앞날이 너무도 예측 가능하다고 불평하면서 … 변화는 꿈도 못 꾸는 것이 보통의 50대들이다.
하지만 그 지루한 50대의 삶에도 허방이 있어서 발을 내딛는 순간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가 생긴다. 생각지도 못한 실직이 한 예다. ‘나이’보다 됨됨이와 능력을 먼저 보는 온정적 고용주들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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