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은행은 왜 문을 닫게 됐는가. 약간은 억지 같아도 “규모가 크지 못해서”라는 항변이 일리가 없어 보이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대마불사’가 확연하다. 진짜 문제투성이인 초대형 은행들은 천문학적 구제 금융을 받아 생명을 부지하는데, 만만한 군소은행들에 대해서는 당국이 가차 없이 가혹한 처분을 내린다. 그래서 문을 닫은 은행만 올 들어 45개에 달한다.
그렇지만 비슷한 크기의 한인은행들이 그런대로 잘 꾸려 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원인을 당국의 비정한 처사와 경기침체로만 돌리기도 힘들다. 미래은행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말이다. 미래은행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호황에 의해 초래된 측면이 크다. 경제, 특히 부동산 경기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처럼 훨훨 타오르던 시절 이뤄진 대출들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부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은행 규모에 걸맞지 않는 800만달러 대출이 외국인 사업가에게 이뤄지는데도 변변한 제어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은행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럴 만도 하다. 경영진의 결정을 감독해야 할 이사진의 전문성이 너무 취약했다. 창립 이사 혹은 지분 이사들이 대부분이고 은행 업무에 정통한 전문 이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다른 은행 이사들에 비해 유독 에고가 강하고 목소리 큰 이사들이 많아 잡음과 알력이 계속 있어 왔다. 이런 인적 구성과 분위기에서는 합리적인 판단과 감독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인은행에서 이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런 만큼 이들에게는 남 다른 자질이 요구된다. 한인은행권의 한 고위 인사는 이사의 기본적인 자질로 인품, 사업가로서의 능력과 함께 ‘청지기 의식’을 꼽았다. 다른 이의 소중한 돈을 잘 관리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청지기 의식’을 제대로 지니고 있다면 섣부르게 투자나 대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한다.
은행 이사 자리가 돈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명예욕을 만족시키는 소도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도 그동안 한인은행의 많은 이사 자리를 이런 의식을 가진 인사들이 채워온 것이 사실이다. 호황의 장막 뒤에 감추어져 있던 인적 구성의 문제점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본격적으로 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대 최고 논객의 하나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는 학자다. 그는 신뢰를 ‘사회적 자본’이라 불렀다. 미래은행은 자본금 액수도 액수지만 ‘사회적 자본’ 역시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최근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자의 귀재로 존경받는 워런 버핏은 기업투자를 결정할 때 경영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단히 중요시 한다. 그의 전설적인 투자 성공은 결국 사람을 잘 보는 탁월한 안목과 일단 선택한 사람은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자세가 가져다 준 것이다. 그는 탁월한 경영자와 괜찮은 사업모델, 그리고 괜찮은 경영자와 탁월한 사업모델 중 고르라면 전자를 택한다고 할 만큼 경영자를 중시했다.
미래은행의 미래를 보고 투자했던 400여명의 소액투자가들은 알토란같은 돈을 연기처럼 날려 보내고 분노와 허탈감에 빠져 있다. 만약 이들이 투자에 앞서 버핏에게 자문을 구했다면 그는 뭐라 대답했을까. 아마도 긍정적인 답변은 듣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미래은행 몰락은 본질적으로 ‘인재’(人災)이다. 투자는 사람을 잘 보고 해야 한다. 은행이라면 은행장과 이사진 면면과 그들의 백그라운드 등을 잘 살핀 후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다. 버핏처럼 따라 하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것만 꼼꼼히 따져 봐도 병증이 있는 대상을 걸러내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은행 경영진과 이사들이 전문적 지식과 도덕적인 자질을 두루 갖추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우리는 지난 한해 사이 계속해 목격해 오고 있다. 은행에 대한 당국의 규제와 간섭에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오지만 ‘청지기 의식’이 결여된 은행에는 이런 채찍이 불가피하다. 미래은행 사태는 ‘신뢰’ ‘청지기 의식’ 같은 덕목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결국 외부환경보다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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