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최근 한국에서는 자녀양육에 관한 TV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SBS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EBS의 ‘60분 부모’ 같은 자녀양육 프로그램에서는 매 회마다 유형별로 아이의 문제를 소개하면서 아동심리나 놀이치료 전문가들이 해결책을 제시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단순히 이론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녀양육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제상황을 가지고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필자도 심리치료와 놀이치료전문가로서 클리닉에서 아이들을 많이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들을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다. 실제 치료현장에서 다뤄보지 않는 문제유형에 대한 간접경험도 할 수 있고, 또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들의 조언과 상담기법을 배울 수 있어서 여러모로 유용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면서 일반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좀 아쉬운 점을 발견했다. 출연한 부모들이 하나같이 엄마들 일색이라는 것이다. 편모가정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대개 아빠가 있는 가정인 경우가 많다.
필자가 일하는 클리닉에 자녀문제로 찾아오는 부모들을 보면 하나같이 엄마들뿐이다. 상담 약속 때문에 아이 집에 전화를 하게 되면 먼저 아빠가 받아도 금세 엄마에게 수화기를 넘겨준다. 아이 엄마랑 상의하라는 것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부모양육학교 과정에서도 자발적으로 수강하는 아빠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흔치가 않다. 간간히 찾아오는 분들은 아동국에서 교육명령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대 원시시대에서는 남자가 밖에 나가서 수렵활동을 하고 여자는 집에서 가사와 양육을 책임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는 남녀가 함께 맞벌이를 하고 가사와 양육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남자가 혼자서 유모차를 끌고 가거나 놀아주는 모습을 흔히 볼 수가 있다.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육아책임을 아빠가 전적으로 맡는 경우도 많다. 운동 프로그램에 데려다 주고,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사 주는 것은 대개 아빠의 몫이다. 그만큼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 아빠들은 시대에 한참 뒤쳐져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우리 아빠들은 참 부지런히 일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열심히 사업과 직장업무로 시달린다. 저녁과 주말 스케줄은 각종 회식, 모임, 골프 아웃팅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자녀양육은 엄마에게 전적으로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어떤 아빠 한 분이 어린 자녀가 자기에게 오면 울기만 한다면서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나중에 애가 아빠를 외면해도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때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빠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아이와 아빠의 관계도 서원해질 수도 있고 또 엄마 못지않게 친밀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자녀양육에 있어서 아빠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아빠는 아이들의 성정체감 형성을 돕고 역할모델 노릇을 해야 한다.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라난 아이들이 향후 건강한 안정감과 애착감을 발달시킬 수 있다. 자녀양육이 엄마에게만 전적으로 맡겨지게 되면 아이들은 마치 편모가정에서 자라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명목적인 아빠만 존재할 뿐이지 실제적인 아빠는 상실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아빠들 사이에는 ‘프랜들리 대디(Friendly Daddy)’라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 엄격했던 아빠들과는 달리 자녀의 양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그래도 ‘양육은 엄마가 맡아야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아빠가 양육을 다 맡으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곁에 아빠가 있어 주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엄마와 아빠 둘 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자녀양육 프로그램에도, 자녀양육 세미나에도, 학교 교사-부모 모임에도, 또 자녀상담 시에도 아빠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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