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 아티스트 - (12) 장영혜 중공업
장영혜 중공업(Young-Hae Chang Heavy Industries)은 이름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가군이다. 이들은 공장을 짓거나 도로를 건설하거나 유조선을 제작하는 중공업회사가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 2인 디지털아트 회사, 한국인 아내 장영혜와 중국계 미국인 남편 마크 보주(Mark Voge)가 1999년 조직한 ‘웹 아트’ 또는 ‘넷 아트’ 그룹이다. 장영혜가 CEO(최고경영자), 마크 보주는 CIO(지식 총괄책임자)로 일하는 장영혜 중공업의 홈페이지(www.yhchang.com)에는 하루 4만3,000명이 클릭해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그러니까 넷 아트(Net Art)란 미술관을 찾지 않아도 컴퓨터로 쉽게 볼 수 있고, 누구나 소장도 할 수 있는 비물질적 예술작업이다. 이들의 작품은 직접 인터넷을 통해 보고 듣지 않으면 설명이 좀 어렵다. 그러나 일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작품들을 접하고 나면 다른 컨템포러리 아트에 비해 오히려 이해가 쉽고, 시각·청각으로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 부부 ‘넷 아트’ 그룹
강렬한 음악과 화면 가득한 글자로 메시지 전달
장영혜 중공업은 음악과 글자라는 단 두 가지 미디엄을 가지고 세상의 온갖 문제들-권력, 자본, 욕망, 죽음, 섹스, 여성, 남북, 사회 현실에 관하여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선정적으로 쏟아낸다.
심장의 박동을 촉진하는 빠른 비트의 음악, 또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재즈/보사노바의 리듬이 들려오는 가운데 화면을 가득 채우는 단어와 문장 텍스트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압도되는 이유는 아주 강렬한 음악 때문이기도 하고, 텍스트의 내용 때문이기도 하며, 그 글과 음악이 전달되는 독특한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람을 공연히 흥분시킬 만큼 최면적인데 그 도발적인 신랄함과 냉소적인 노골성에서 디지털 세대의 시적 매력이 느껴진다.
장영혜 중공업은 텍스트를 아무런 디자인 없이 크기가 다른 몇 가지 타이포그래피로 간결하게 제작함으로써 그 의미만을 부각시킨다. 텍스트는 영어, 불어, 중국어, 독일어, 일본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터키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표현되며, 글자도 화면에 꽉 차게 큼직하거나 작거나 길게 혹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다양하고 복잡하게 표현된다.
이들에게 음악은 텍스트만큼이나 중요하다. 한국의 트로트 등 다양한 음악을 리믹스하기도 하고 컴퓨터로 직접 만들거나 드럼을 치면서 텍스트에 맞는 새로운 비트를 창안해 낸다.
원래 화가 겸 조각가 설치미술가였던 장영혜는 파리에서 마르셀 뒤샹에게 영향 받은 작업을 하다가 시를 쓰던 마크 보주와 함께 10년 전 플래시 프로그램을 이용한 웹아트를 발표하면서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국제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다른 장르로 전환한 이유에 대해 장영혜 중공업은 “서울로 이주했을 때 우리는 스튜디오가 없었고 갖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예술을 하고 시를 쓰고 싶었지만 전에 하던 작업을 되풀이하기는 싫었으며, 마침 그때 디지털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고 김선정 큐레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1999년 그들이 처음 발표한 작품은 ‘삼성’ 프로젝트였다. 한국인의 가정과 생활에 아주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는 삼성을 냉소하면서 그들의 자본과 권력, 삼성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첨단산업을 비꼰 일련의 작품들이다. ‘삼성의 뜻은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삼성은 내 사랑, 삼성 나의 영웅, 삼성 나라의 구원자, 삶에도 죽음에도 삼성 아멘’ 등 인터넷 화면에 온통 삼성의 쾌락을 예찬한 글들로 채워진 플래시 아트작업을 내놓았을 때 미술계는 경악했다. 부엌에서 일하던 주부가 삼성은 오르가즘을 선사한다며 그 쾌락을 맛보고 싶어 노하우를 시어머니에게도 묻고 삼성 소비자센터에 묻는다는 독백은 그 도발적인 내용이 요란한 타악의 리듬을 타고 감상자의 뇌리에 들어박히는 효과를 남겼다.
재미있는 것은 그로부터 5년 뒤 삼성의 미술관인 ‘로댕 갤러리’에서 장영혜 중공업의 대규모 기획전이 열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비디오 설치 ‘문을 부숴!’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로댕 갤러리의 소장품인 ‘지옥의 문’ 옆에 대형 냉장고 9개를 쌓음으로써 마치 ‘지옥의 문을 부숴!’라고 패러디하는 작품으로 읽히기도 했다.
LACMA 전시에서 이들은 전시장 입구에 삐딱하게 설치된 2개의 모니터를 통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든 온라인 비디오 작품 ‘나의 샘플들’(Samples of Me, 2009)과 웹 프로그램 ‘서커돔’(SUCKERDOM: PLEASE COME PLAY WITH ME, BABY)을 소개한다.
뉴욕의 뉴뮤지엄에서 열렸던 장영혜 중공업의 기획전.
한국 대표 웹아티스트
에르메스·웨비상 수상
▲ 장영혜 중공업은
한국의 몇 안 되는 웹아티스트인 장영혜 중공업은 국제 미술계에서 꽤 유명하지만 ‘얼굴 없는 작가’의 익명성을 갖고 외부에 잘 나서지 않는다.
웹 전문가, 언론인, 예술가, 학자 등으로 구성된 350여명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웨비상(The Webby Awards) 예술부문에서 2000, 2001년 두 차례 수상하였고, 2000년 에르메스상 수상,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참가, 스웨덴 현대미술관, 미국의 뉴뮤지엄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해외 미술관들과의 협업으로 위촉 작업도 많이 하고 있으며 파리 퐁피두센터, 네덜란드 잔 쿠넨 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의 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이번 LACMA 전시를 위해 작업한 ‘서커돔’의 한 텍스트.
대표작 ‘삼성’ 프로젝트 중의 한 장면.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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