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은 대체적으로 용감하다. 하지만 겁쟁이 군인도 얼마든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모든 군인은 용감하다”는 주장을 편다면 사실을 상당히 왜곡하는 것이 된다. 신문기자는 보통 정의감이 강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신문기자들은 정의롭다”는 일반론은 실상과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주장이다. 논리학에서는 이것을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뜻에서 ‘불고사정의 곡론’이라고 부른다.
이치에 딱 들어맞지 않는 주장이나 이론을 ‘곡론’이라 한다. 궤변과 왜곡, 그리고 모순이 가득하다. 올곧은 주장을 의미하는 ‘정론’의 반대말이다. 언론의 가야 할 길이 ‘곡론’이 아닌 ‘정론’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 검찰이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했던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을 기소했다. 검찰 기소내용에 따르면 제작진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관련 내용을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하거나 오역하는 등의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과장·왜곡해 일부 인사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관련업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를 논리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은폐의 곡론’이 된다. ‘은폐의 곡론’은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만 드러내고 불리한 사실은 감추는 곡론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흔하게 목격하는 아전인수식의 주장이다.
검찰의 기소사실을 보도하는 언론들의 논조는 몇 가지로 확연히 구분된다. 진보언론들은 언론 자유에 초점을 맞춰 검찰을 비판한다. 중도언론들은 사실보도에 치중하면서 기소와 관련한 찬반양론을 비교적 균형 있게 소개하고 있다.
반면 보수언론들은 사설과 기획기사 등을 총 동원해 프로그램 비판에 나서고 있다. 아직 기소단계에 불과하고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지려면 멀었는데도 모든 혐의내용을 기정사실화 한다. “너, 딱 걸렸어” 하는 감정적인 태도가 여실히 느껴진다. 이런 보도태도는 객관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높다. 우스운 것은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언론들이 바로 몇 년 전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 PD수첩과 비슷한 논조를 폈던 언론사들이라는 점이다.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 미·영국인보다 취약” “뭐! 미국산 늙은 쇠고기 한국만 먹는다고? 일본은 20개월 한국은 30개월 미만 수입, 쇠고기 협상서 사육기간 더 낮춰야”…. 영락없이 지난해 진보언론들과 PD수첩이 내보낸 보도의 제목쯤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은 노무현 정부시절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 했을 때 보수언론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려 썼던 기사의 제목들이다.
몇 년 사이에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달라진 것이 아닐 터인데도 논조가 180도 바뀐 것을 보면 노무현 하는 일은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몰고 가야 한다는 강박증이 묻어난다. 얼마 전까지 자기 입으로 했던 주장을 버리고 얼굴을 바꾼 채 난도질에 나서는 것은 심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한 언론학자는 “예수가 현대에 살았더라면 매스컴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혔을 것”이라고 꼬집은 적이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떠올려본 것은 간음하다 잡혀 온 사마리아 여인을 단죄하려는 유대인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치라”고 일갈하던 예수의 모습이었다. 예수의 외침에 유대인들은 머쓱해져 하나 둘 자리를 떴지만 이 장면이 오늘의 것이었다면 돌을 들어 내리친 언론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언론의 ‘자가당착의 곡론’은 ‘은폐의 곡론’보다 심각성과 폐해가 훨씬 크다. 왜냐하면 이것은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자가당착의 곡론’은 진보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영향력에 있어 보수 언론에 못 미치기 때문에 덜 드러날 뿐이다. 곡론의 홍수 속에 공익은 실종되고 사익과 이념만이 형해화 된 채 볼썽사나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언론뿐 아니다. 다른 이들을 계도하는 위치에 있거나 그런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가당착의 곡론’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 말을 하고 보니 이번 칼럼 쓰는 일은 유난히 조심스러워진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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