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은 16세기 스페인 소설가 몬탈보가 쓴 ‘에스플란디안의 전과’라는 소설에 나온다.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이 섬에는 여왕 칼리피아가 거느리는 검은 여전사들만 살고 있으며 황금이 넘친다. 당시 스페인 남성들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캘리포니아가 발견된 것은 16세기지만 그 후 300년 이상 이곳은 거의 버려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이곳이 세상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남게 된 것은 1848년 북가주 서터의 방앗간이 있던 아메리칸 리버에서 금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가주는 ‘골드 러시’와 함께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 1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황금의 땅’, ‘기회의 땅’이라는 가주의 이미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가주의 별명이 ‘골든 스테이트’이고 주 모토가 “발견했다!”(Eureka!)인 것도 그렇고 ‘아메리칸 드림’을 능가하는 ‘캘리포니아 드림’이란 말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캘리포니아 드림’이 많이 퇴색하고 있다. 집값은 전국 최대 폭으로 떨어지고 실업률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지난 2년간 주택 경기 침체로 가주민들이 입은 재산 피해만 1조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4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대적인 증세로 간신히 틀어막은 주 재정 적자는 다시 늘어나 7월말까지 240억 달러의 세수를 마련하지 못하면 주 정부 전체가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한다. 미국 내 인구 최다 도시, 나라로 쳐도 경제 규모가 세계 8위에다 하이텍의 본산 실리콘 밸리와 연예 산업의 메카 할리웃, 어디보다 좋은 날씨 등 호조건을 갖추고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리드하던 가주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됐을까.
그 근본 원인은 잘못된 정책과 그로 인한 비즈니스 환경 악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가주의 소득세는 50개 주 가운데 가장 누진적이다. 최고 세율은 10.55%로 뉴욕 다음으로 가장 높고 전체 세금의 55%를 최고 소득자 1%가 부담하고 있다. 교원 노조를 비롯한 공무원 노조의 입김이 워낙 세 이들에 대한 지출은 줄이지 못하고 환경 보호론자들 덕에 비즈니스에 대한 규제는 어느 주보다 까다롭다. 가주 교사 월급은 전국에서 최고 수준이지만 학력 평가 결과는 꼴찌에 가깝다.
고소득자와 비즈니스업주 가운데 가주를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 다퉈 이곳을 뜨려 하고 있다. ‘부자 주, 가난한 주’라는 보고서를 쓴 아더 래퍼와 스티븐 무어에 따르면 연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고소득 2만5,000 가구 가운데 5,000 가구가 2000년대 초 가주를 떠났으며 이들이 내던 세금이 사라진 것이 재정 적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 네바다나 텍사스로 가면 소득세를 한 푼도 낼 필요가 없는데 굳이 가주에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세금을 낼 사람과 고용을 창출해야 할 비즈니스가 떠난 곳의 경제가 잘 될 리가 없다.
가주를 떠나는 것은 부자들만이 아니다. 2005년 타주로 이사 가는 사람 수에서 가주는 전국 2위를 차지했고 2008년에만 14만4,000명이 이곳을 떠 4년 연속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계속 가주를 떠날 경우 사상 처음 가주 연방 하원 의석수가 줄어들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가주에서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주의 위기는 천재지변 탓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인간이 저지른 일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최근 “가주 형편이 너무 엉망이라 단일세(flat tax)를 비롯한 획기적인 안을 검토해야 할 때가 왔다”고 밝히고 소득 공제 없이 개인이나 기업에 6% 균일의 세금을 부과하는 안을 검토할 세금 개혁 위원회를 만들었다.
미봉책으로 가주 문제를 해결할 단계는 오래 전에 지났다. 이곳을 떠나려던 사람들이 발길을 되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타주에서도 살기 좋은 가주를 향해 부자와 기업가가 몰려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옛 영광을 되찾는 길이며 단일세는 그 첫걸음이다. 주 정치인들이 이번만은 제발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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