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인타운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70대 중반쯤의 할아버지들이 아버지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분이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날이 되면 전화해서 ‘축하한다(Happy Father’s Day)!’ 한마디하곤 그만이야. 식사를 대접하겠다거나 그런 말도 없어”
생략된 주어는 그분의 아들일 것이었다. 딸이라면 보통 그보다는 자상하게 아버지날을 챙겼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들딸을 떠나서 자녀들이 대체로 어머니날에 비해 아버지날에 다소 소홀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에서 어머니날 주간은 연중 대표적 대목에 속하는 반면 아버지날은 콜렉트 콜이 가장 많은 날로 유명하다. 전화 한통, 그것도 수신자 부담으로 하고 마는 것이 아버지날 ‘선물’이라는 것이다. 셀폰을 주로 쓰는 요즘은 콜렉트 콜이 없어졌겠지만 자녀들이 전화 한통으로 때우고도 별 가책을 받지 않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버지날과 어머니날을 맞는 자녀들의 태도가 다르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자녀들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녀들을 대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태도가 다르고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두란노 아버지학교의 현덕인 미주지역 본부장이 얼마 전 재미있는 지적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면 엄마에게 뛰어갑니다. 그런데 성적표에 점수가 잘 나오면 그때는 아버지에게로 들고 갑니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지요”
어머니와는 정이 깊어서 자신의 모든 걸 드러낼 수 있는 반면 아버지는 거리감이 있고 대화하기도 어려우니까 칭찬받을 일 있을 때만 찾는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스스로를 아주 괜찮은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아버지학교 등록을 권하면 대개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라고 한다. “나 보다 더 나은 아버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나한테 아버지학교 강사 하라고 하면 갈게” 하는 식이다.
자녀가 태어나기 전까지 남성과 여성의 마음은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나면 그 마음은 많이 달라진다. 어머니의 마음은 물과 같다. 아이의 마음이 어느 낮은 곳, 어느 캄캄한 곳에 있든지 기어이 그 마음자락으로 흘러가 품어 안는다.
아버지의 마음은 껍질 딱딱한 연체동물 같다. 속마음은 여리고 따뜻해도 ‘권위’라는 껍질 속에 항상 감춰져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명령이거나 훈계일 뿐이다. 그래서 일정 시기가 지나고 나면 아버지로부터 마음 문을 닫아버리는 자녀들이 생긴다.
지난해 ‘도쿄 소나타’라는 일본영화가 있었다. 실직한 가장이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기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 그러자니 더욱 더 권위적이 되어 가는 모습이 같은 문화권인 우리에게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몸에 밴 전형적인 중년남성이다. 두 아들과의 소통은 차단된 지 오래고 전업주부인 아내는 갑갑해서 터져버릴 지경이다. 겉으로 평온한 가정은 사실상 해체 직전이다. 하지만 그가 밑바닥까지 떨어져 모든 권위가 다 깨지는 경험을 한 후 가족관계는 새 살이 돋듯 조용히 회복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전 존재’로 다가간다. 가능한 모든 시간을 쏟고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줘도 항상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서 “나 보다 더 나은 엄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같은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반면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역할’로서 자신을 인식한다. 가족들 생활비 벌고, 자녀들 공부 잘 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가르치면 할 만큼 다 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자녀와 마주 앉는 시간이 하루에 30분이 채 못 돼도 별로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많이 놀아준 아버지는 노년이 행복하다. 아버지날에 행복한 아버지들이 많았으면 한다. 자녀 앞에서 권위는 절반으로, 같이 지내는 시간은 배로 늘리는 것이 비결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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