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 아티스트 - <11> 양혜규
양혜규(38)는 요즘 국제미술계에서 급부상하는 한국 작가다. 지난 7일 개막된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단독 전시작가로서 개인전(‘응결’)을 열고 있는 그녀는 본 전시(전 세계에서 추린 90명의 작품전)에도 선정돼 광원조각작품 ‘공동체의 일상성’을 선보이고 있다. ‘감성적 개념미술’(emotional conceptualism)을 추구하는 설치미술가’라 불리는 양혜규는 독일 베를린과 서울 아현동을 오가며 치열하게 작업하는 작가다. 현대사회의 잘 드러나지 않는 속내, 작고 후미진 부분, 접혀진 역사 속의 이야기, 개인의 기억들을 감각적이고 재치 있는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그녀에 대해 뉴욕 MoMA의 캐시 할브라이시 부관장은 “작품에 분석적 요소와 감성적 요소가 잘 융합돼 있는 것이 매력”이라고 평했고 LACMA 린 젤레반스키 큐레이터는 “온전한 형태가 아닌 존재에 감정을 불어넣고, 그 감정으로써 존재를 완성하는 것이 감동적이다”라고 칭찬한 바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현재 전시중인 설치작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목소리와 바람’ 앞에 선 작가 양혜규.
올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작가
28일 작품 ‘창고피스’ 퍼포먼스 마련
양혜규는 이번 LACMA 전에서 그가 작가로서 주목받게 된 대표작 ‘창고피스’(Storage Piece, 2004)를 선보인다. 이것은 팔리지 않은 작품을 스토리지에 넣어서 쌓아둔 피스들이다. 당시 런던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지쳐 있던 양혜규는 개인전 제안을 받자 전에 만들어 창고에 쌓아 놓았던 작품들을 포장도 풀지 않고 그대로 내놓은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유명 컬렉터에게 소장되면서 그를 일약 뜨는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팔리지 않는 작품을 계속 만드는 예술가의 삶, 쌓여가는 작품들을 보관할 곳이 없는 작가들의 고충, 이사할 때마다 포장된 작품을 끌고 다녀야 하는 유목민의 삶, 사회 시스템에서 예술작품이란 과연 어떻게, 누구에 의해 그 지위를 획득하는가 등을 다각도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양혜규는 LACMA 개막일인 28일 오후 2시 이 작품에 관한 퍼포먼스를 소개한다. 작가가 고용한 두 명의 배우가 대본에 따라 창고 피스들을 열어보는 행위예술을 보여줄 예정이다.
양혜규는 2006년 한국에서 ‘사동 30번지’라는 개인전으로 화제를 모았다. 작가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살던 인천의 외진 폐가를 전시장으로 만든 독특한 설치전으로, 관람객들은 지도를 들고 찾아가 초대장에 적힌 열쇠번호를 입력해 문을 열고 들어가야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찾아가는 길도 어렵기 짝이 없어 김선정 큐레이터는 2시간을 헤맸다고 했을 만큼 초라하고 불편한 장소였으나, 부엌 거실 문간방 지붕 곳곳에 거울과 종이접기와 조명기구 벽시계 같은 것들을 설치해 접혀진 추억과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 사동 30번지는 개인의 옛집에 담긴 한국사회의 보편적 기억을 예민하게 성찰한 작품이었다. 양혜규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감각을 동원한 감성적인 공동체의 구현”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오감을 자극하는 장치가 동원된다. 소리, 바람, 향기, 빛, 열, 습기 등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선풍기, 가습기, 향 분사기, 히터 등을 배치해 총체적인 감각체험을 이끄는 양혜규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도 빛과 소리와 냄새로 채웠다. 설치작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목소리와 바람’은 여러 색깔의 블라인드를 엇갈리게 늘어뜨리고 위에서 도는 선풍기와 사이사이 매달린 방향제로 인해 바람이 불고 향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색색으로 흔들리는 블라인드가 관객에게 말을 건다.
그 옆에는 작가의 베를린 집 부엌을 재현한 ‘살림’이 있다. 싱크대 주변에 수세미, 냄비받침, 익스텐션 코드가 얼기설기 엮여 있고, 뜨거운 백열등이 곳곳을 비추는 이곳에 들어가면 부엌 특유의 독특하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
그 옆에서는 비디오에세이가 상영된다. 서울 아현동과 비수기의 베니스 한국관 주변을 촬영해 교차 편집한 ‘쌍과 반쪽-이름 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이다. “만져지지 않고 형용할 수 없는 존재를 보여주는 게 이 전시의 목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양혜규는 ‘신유목민’이라고 불린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경험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외국인으로 사는 외로움과 고립, 어느 곳에도 뿌리 내리지 않는 한 여성의 정신을 냉철하게 반영해왔다. 서울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그녀는 이후 10여년간 아트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따라 파리·런던·도쿄·뉴욕·베를린 등지로 옮겨 다니면서 고달프지만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96년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대칭적 불평등’(2009·스페인), ‘불균등하게’(2006·네덜란드), ‘사동 30번지’(2006·인천), ‘창고피스’(2004·영국) 등의 개인전을 가졌고, 지난해 말 이곳 레드캣 갤러리에서 ‘비대칭적 평등’을 소개한 바 있다. 2007년 ‘아트 바젤’에서 젊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발루아즈 미술상’을 받았고, 지난해 독일경제지 ‘카피탈’이 선정하는 세계 미디어 아티스트 100인에 한국작가로는 이불(25위)과 함께 92위에 올랐다.
작가 홈페이지 www.heikejung.de
이번 LACMA 전시외에서 만나게 될 ‘창고 파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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