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의 먹구름 속에서 그나마 한줄기 햇살이 됐던 것은 떨어지는 개솔린 가격이었다. 그러던 개솔린 가격이 얼마 전부터 다시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올 여름 성수기 개솔린 가격이 갤런 당 2달러30센트 정도 되리라던 연방정부 예견은 3달러를 넘어 서면서 이미 빗나갔고 머지않아 4달러 선을 돌파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지배한다.
이런 예측은 현 경제위기를 일찌감치 예견했던 뉴욕대학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내년이면 원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으로 한층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기가 별로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다시 치솟는 개솔린 가격은 상승폭만큼이나 소비자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여준다.
그러나 보다 큰 우려는 이런 추세가 미미하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에 찬물을 끼얹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의 위험을 높인다. 또 갤런 당 10센트가 오르면 미국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하루에 무려 4,000만달러가 늘어난다. 개솔린 가격 상승이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개솔린 절약형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대중교통 사용자도 증가한다. 개솔린 가격 추이에 따른 ‘사회적 요요현상’이다. 잊을 만하다 싶으면 다시 엄습해 오는 고유가 공포는 자동차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렌지카운티 플라센티아에 사는 김명국씨는 지난해 초 미국 직장에서 은퇴한 후 오래 타왔던 캐딜락을 처분했다. 차를 없앤 후 1년여 째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일상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가 차와 결별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경제적인 것이었다. 차를 유지하는데 들었던 월 600달러가량의 지출이 없어지면서 지출 규모와 심적 부담이 한결 가벼워졌다.
김씨가 한 달에 지출하는 교통관련 비용은 오렌지카운티 시니어용 버스 패스 18달러에 LA로 외출할 때 이용하는 메크로링크 요금 등 40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지출로도 김씨는 파트타임 직장 출퇴근은 물론 LA에서 친구들과 저녁 먹고 술 한잔 기울이는 일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해결하고 있다. 그에게 롤러코스터를 탄 개솔린 가격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자동차 사용을 줄이면서 일상생활을 꾸려가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좀 더 극단적인 사람들은 “당신의 자동차와 이혼하라”고까지 권유한다. 자동차 없는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단체들도 여럿이다.
우리는 자동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자동차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공간 이동에 없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개성과 신분을 상징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따른 대가 또한 크다. 사고의 위험뿐 아니라 자동차를 굴리기 위해 치러야 하는 지출이 만만치 않다. 지금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자동차와의 이혼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문명의 발전이 초래한 양면성을 자동차처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다. 자동차 때문에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자동차 때문에 쓸데없이 움직이는 공간이 넓어짐으로써 시간 절약 효과가 상쇄돼 버렸다.
고인이 된 문화비평가 이반 일리치의 신랄한 지적은 자동차와 우리들 간의 관계를 되짚어 보게 한다. 일리치에 따르면 자동차 수리를 위해 정비소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을 빼더라도 자동차 융자금 납부와 개솔린 및 수리비용 등을 버는데 쏟는 노동을 모두 고려해 계산해 보면 자동차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속도는 고작 시간당 5마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동차 없는 생활의 주창자들은 완전한 결별이 힘들다면 자동차 사용은 최소화 하면서(이들은 이것을 가끔 서로 만나는 ‘우호적 이혼’이라 표현한다) 다른 이동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권한다.
자동차와 결별하고 대중교통을 선택한 김명국씨는 “대중교통 수단이 완벽할 수는 없다. 불편한 점에 신경을 쓰면 절대 이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좋은 점을 본다면 이보다 편리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어떤 마음으로 인연을 맺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마치 배우자 선택의 지혜를 말하는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와의 이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의존성을 줄이는 일은 얼마든 가능할 것 같다. 지하철을 바꿔 타기 위해 오늘도 다운타운 7가 스테이션 지하도를 오가는 수많은 인파들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 그런 옵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운신의 폭은 조금 더 커지지 않을까.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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