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 아티스트 - <10> 서도호
서도호(47)는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작가다. 그는 남가주 한인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데 1998년 카파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돼 이듬해 LA 한국문화원에서 전시를 가졌던 일이 그것이다. 그 때만 해도 그가 국제무대에서 ‘뜨기’ 전이었고 설치미술도 흔치 않던 시기였는데, 문화원 1층에서 나선형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가면 곧바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끔 설치된 ‘서울홈/LA홈’은 아주 특이하고 독창적인 작품이었다. 얇은 천으로 작가의 서울 집 모형을 만든 이 작품은 유목민화 되어가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섬유설치로, 그 푸르스름한 천의 빛깔과 느낌, 얼개와 바느질 땀 같은 것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번 LACMA 전시회에 설치될 ‘떨어진 별 1/5’
개개인의 기억이 담긴 옷과 집을 통해 정체성 질문
사회적 공간·개인적 공간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서도호는 정체성과 공간에 대한 작업에 천착해 왔다. 집단에서 개인의 정체성, 외국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편 사회적 공간과 개인적 공간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다. 그는 옷과 집이라는 소재를 자주 사용하는데, 옷은 개인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는 가장 작은 공간이고, 집은 개인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는 확대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콩알 크기의 고교생 졸업사진 3만7,000개로 점무늬 벽지를 만든 ‘우리는 누구인가?’(Who Am We?·1997), 교복 60벌을 수십개의 마네킹에 입혀 하나로 연결한 ‘교복’, 유치원 복부터 민방위 군복까지 한국 남자가 입어야 하는 10개의 제복을 전시한 ‘유니폼’(2006), 군인들의 인식표 10만개를 비늘처럼 엮어 하나의 갑옷으로 만든 ‘섬/원’(Some/One) 등은 제도화된 한국 사회구조 속 획일화된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졸업사진 하나하나는 각 학생의 모습이지만 전체로는 벽지 무늬의 일부일 뿐이다. 한 개의 군번 인식표는 한 청년의 존재를 상징하지만, 거대한 갑옷을 이루는 금속 한 조각이기도 하다.
정체성에 관한 작업은 조금 더 진화해 군상들에 지나지 않는 개인의 익명성을 보여준다. 서도호를 세계적 작가로 만든 ‘플로어’(Floor)는 거대한 마루유리를 키가 5cm인 수많은 인간들이 떠받치고 있는 설치작품이다. 휴스턴 미술관이 올해 초 구입한 ‘카르마’(Karma)는 거대한 두개의 발아래 수백 개의 군상들이 깔려 있는 설치작품이다. ‘I Miss You’ ‘Leave Me Alone’ ‘Don’t Look Back’ 등의 글자가 쓰인 ‘도어매트’(Doormat)는 발 깔개 아래 사람 모양의 고무인형 수천개가 들어차 있다.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사람들, 힘들게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익명의 개인들, 그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번 LACMA 전시회에는 공간에 관한 작품 ‘떨어진 별 1/5’(Fallen Star 1/5)을 설치한다. 유학시절 그가 살았던 브루클린의 아파트에 서울의 한옥집이 날아와 충돌한 모습을 실물 5분의1 사이즈로 축소해 극사실적으로 만든 설치물이다. 미국의 큰 집에 한국의 작은 집이 들어와 박힌, 건물 내부의 상세한 부분까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서도호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에 오면서 함께 가져온 한국의 추억과 향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수동적으로 그리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가지고 다닐 것인가 생각하다가 후자를 선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서울홈/LA홈’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거주했던 집을 특별한 방식으로 재현한 다음 다른 곳에서 전시하는 작업을 통해 그는 경계를 넘는 현대인의 삶과 그에 따라 개인의 고유한 공간도 함께 움직이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미술계의 ‘엄친아’로 불리는 서도호는 한국 화단의 거목 서세옥 화백의 장남으로, 그 자신도 서울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화의 깊은 뿌리와 배경을 갖고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로 우뚝 선 그를 보면 좋은 아트라는 것은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과 가장 잘 화해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 혹은 외부와의 경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껍질이란 정체성이요, 경계란 그 정체성을 둘러싼 공간일 것이다. 그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계화 시대에 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서도호는 20대 후반 미국에 온 후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BFA, 예일대 미술대학 조소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작가로 선정돼 국제무대에 알려지기 시작,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아트선재센터, 시애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레만 모핀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06년 LACMA가 작품 ‘문’(Gate)을 매입했으며 휴스턴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에도 작품이 소장돼 있다. 그는 올 가을 재개관할 LACMA 한국관의 디자인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이 프로젝트는 취소됐다.
서도호는 LACMA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25일 오후 7시 브라운 오디토리엄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갖는다. 린 젤레반스키 큐레이터와 함께 자신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티켓은 무료이며 프로그램 1시간 전에 배부한다.
휴스턴미술관에서 올해 초 구입, 상설전시 하게 될 ‘카르마’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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