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주 카이로에서 이슬람과의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는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사우디로 향하던 대통령 전용기에서 오바마는 모두가 잠에 떨어져 있을 때도 홀로 연설문 원고를 들어다 보며 마지막 순간까지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 자신이 선택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실릴 역사적 무게감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 독일의 나치수용소와 프랑스의 노르망디 연합군 묘비를 찾은 오바마는 인상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국가들 간의 현안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역사, 인도주의에 대한 열망 등 보다 근본적이고 본능적인 문제들을 언급했다. 정치지도자들보다는 보통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소통을 추구하는 오바마의 의지가 잘 드러난 순방이었다.
전임자와는 사뭇 다른 오바마의 소통의지와 공감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대단히 풍부한 인문적인 소양이 그 원천이 아닐까 싶다. 인문적 소양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뜻한다. 이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서 인간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온갖 조직들과 기업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요구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오바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다양한 문화권에서 성장했다. 학벌도 뛰어나다. 또 확실하게 보장돼 있던 화려한 미래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빈민촌에 들어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봤다.
불우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수재들은 대부분 출세로 이를 보상 받으려 한다. 하지만 오바마는 달랐다. 그에게는 개인의 입신양명을 뛰어넘어 추구해야 할 보편적 목표에 대한 믿음과 통찰력이 있었다.
인문적 소양은 지니고 싶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땅 속의 광물처럼 오랜 세월 독서와 반복된 깊은 사유, 그리고 삶속에서의 체험이 어우러져 형성된다.
땅 속에 감춰져 있던 오바마를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그의 인문적 소양이었다. 오바마는 문장력이 뛰어나다. 자신의 책을 직접 쓴다. 오바마를 일약 전국적 인물로 끌어 올린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문도 자기가 썼다. 남이 써 준 연설문을 읽는 것과 직접 쓴 연설문은 청중에 다가가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로 꼽히는 게티스버그 연설도 링컨이 게티스버그로 가는 열차 안에서 직접 쓴 것이었기에 그런 울림이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링컨도 인문적 소양이 넘쳐난 대통령이었다.
최근 기업의 CEO들도 인문적 소양을 쌓는 일에 깊은 관심들을 나타내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과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는 바탕인 인문적 소양 없이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조경영이 구두선에 그칠 뿐이라는 자각에서다. 그래서 열심히 책도 보고 문화도 즐기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추려고들 노력한다.
효율과 실적 제일주의의 표상인 기업들조차 인문적 소양을 말하는데 다양한 이해와 가치가 충돌하는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에게 이런 소양이 요구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한국의 비극 가운데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 특히 대통령 가운데 인문적 소양을 갖춘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권력을 쟁취하는데 능한 정치 공학 전문가들은 넘쳐나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와 감성을 갖춘 인문적 인물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소양을 지닌 인물이 정치판 싸움에서 살아남아 대통령까지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우리가 세종과 정조처럼 인문적인 소양이 뛰어났던 호학 군주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세습제였기 때문이다.
어느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매일 청와대 경내를 달렸다. 그가 건강 챙기는 것의 절반만이라도 책 읽는 일에 힘을 쏟았더라면 조금은 더 나은 평가를 받고 있을 것이다. “책 읽는 사람(reader)이 꼭 지도자(leader)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는 꼭 책 읽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던 해리 트루먼의 말이 떠오른다.
현 정권에 대해 소통의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크게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달라진다 해도 일시적 눈가림이나 시늉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몸속 깊이 배어 있는 태도와 머릿속 깊은 곳의 의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인문적 소양을 지닌 국가 지도자를 원한다면 다음에 제대로 뽑는 수밖에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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