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럴 모터즈(GM)가 무너졌다. 미국의 상징이었던 GM이 마침내 파산선고를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다. 그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이 그러나 계속해 일어나고 있다.
언제까지이고 상황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진다. 불현듯 위기가 찾아든 것이다. 이후 모든 것이 급변한다.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숨이 가쁠 정도다. 금융위기 발생한 후 여기저기서 목도되는 현실이다.
“그 날을 정확히 찍어 말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날이 왔을 때 그 체제는 폭발하거나, 붕괴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그로테스크하다고 할까, 그런 위기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김정일 체제의 북한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 번 위기가 발생하면 그 이후 북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이야기다. 위기발생의 그 정확한 때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대체적인 전망은 김정일 유고, 혹은 권력승계과정의 어느 시점으로 보고 있다.
꽤나 난리를 떨었다. 시작은 막가파식 공갈협박이었다.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란 자가 전면대결 태세를 선언한다. 거기다가 개성공단 폐쇄 으름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일을 발사한다. 그리고 핵실험에, 휴전협정을 지키지 않겠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와서 보니 왜 그 난리였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김정일이 3남 정운을 후계자로 한 후계구도 구축과 맞물려 험악한 말에, 미사일을 쏘고, 또 핵실험을 해댄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러면 무엇일까. 권력승계가 상당히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한반도 상황이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운 후계’는 3대 세습의 완성이라기보다 세습작업의 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보이고 있는 시각으로,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불안정성은 가중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수령절대주의 체제는 개인 숭배체제다. 후계자는 그러므로 신민(臣民)에게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영웅화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 김정일은 KAL기 테러사건 등을 통해 그 ‘뭔가’를 보여주었다. 김정운에게도 바로 그런 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정운 후계’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따른다. 유례없는 3대 세습에, 20대 중반의 나이라는 점이 그렇다. 이 김정운에게 북한 군부는 과연 충성을 바칠 것인지, 군부의 충성을 유발하기 위해서도 김정운은 뭔가를 과시해야 한다. 그 과시는 핵실험을 능가하는 도발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후계자를 향한 ‘충성경쟁’은 언제든지 ‘권력투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절대 권력이 쓰러진다. 그러면 동시에 줄어드는 게 개인지배 영향력이다. 그 공백을 필연적으로 메우는 것은 파벌주의다. 권력 승계를 둘러싸고 처절한 권력투쟁이 뒤따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김정운 후계’ 안착을 위해서는 김정일의 건재가 필수적이다. 그 김정일의 건강이 말이 아니다. 권력승계가 극히 불안한 것이다.
“북한은 유효소통기간이 지난 나라다. 냉전종식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가짜 국가다.” 토머스 바넷의 말이다. ‘언제까지 미국이, 국제사회가 김정일 체제의 불장난을 용인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이런 식으로 던진 것이다.
북한 권력승계를 불안케 하는 다른 요소는 다름 아닌 이 ‘김정일 체제 용도폐기론’이다. 중국은 북한 수령절대주의 체제유지에 상수(常數)역할을 해왔다. 그 중국의 북한 피로증세가 부쩍 심해졌다. 그러면서 제기되고 있는 게 ‘김정일 체제 용도폐기론’이어서 하는 말이다.
“깜짝 놀랄 이야기들이 중국에서 들려온다. 북한의 2차 핵실험은 북경이 제시한 레드라인을 넘어선 행위라는 비난과 함께 한 북한정책의 전면 변화를 강력히 시사하는 발언들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중국 전문기자 존 폼프릿의 지적으로,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양광례 중국 국방부장의 북한 공개 비판이다.
중국 군부는 김정일 체제의 굳건한 버팀목이었다. 그 중국 군부를 대표하는 국방부장이 전례를 깨고 북한 체제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선 것. 이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애송이 김정운’ 후계와 관련해 중국은 북한정책의 전면적 수정을 할 수도 있는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 가능성의 하나가 미국과의 ‘빅 딜’설이다. ‘차이메리카’(Chimerica· 중국과 미국 합성어)라고 했나. 보다 유착된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대만문제에 대해 상당한 양보를 얻어내는 대신 북한문제에는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다는 것이다.
북한 권력 지형의 재편은 이미 시작됐다. 그 재편과정은 그러면 위기로 다가올까, 아니면 기회가 될까. 위기보다는 오히려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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