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주는 교육현실 안타까워
어려움 극복 학생 발굴노력 이해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제프리 아처의 작품 중 ‘출생의 포로’(A Prisoner of Birth)라는 소설이 있다.
런던의 하층계급 출신으로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대니라는 청년은 약혼자와 데이트 중 패싸움에 말려들면서, 진범 일당의 거짓증언으로 살인혐의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침 그가 수감된 감방에는 군지휘관 시절 실수로 형을 살고 있는 귀족 출신인 니콜라스가 있었는데, 이 두 청년은 나이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해서 간수들은 물론 감방 동료들도 잘 구별을 못하는 상태였다.
신분과 지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두 청년사이에는 우정의 싹이 트면서, 한 사람은 스승으로서 다른 사람은 학생으로서, 감방에서 나마 보람을 찾게 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한편 바깥세상에서 대니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운 진범일당은, 대니의 끈질긴 법적투쟁에 위협을 느끼고, 죄수 중에서도 흉악범 한 명을 매수해서 대니를 살해하게 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살인청부를 맡은 죄수는 대니가 아닌 그와 비슷하게 생긴 니콜라스를 살해하게 된다.
한편 대니의 처지를 동정하고 있던 몇 사람의 도움으로 대니는 마침내 형기를 마치고 출옥예정이었던 니콜라스로 변신을 하고 감옥 문을 나선다.
그때부터 대니의 위장생활은 계속되고, 대니가 죽은 것으로 알고 축배를 들고 기뻐하는 진범 일당들에게 차츰차츰 복수의 칼을 겨누게 되었다. 대니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운 진짜 살인범 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상급법원 판사이고, 이와 동조해서 위증을 한 멤버들은 각각 영국 의회 의원과 인기절정의 배우였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권력과 금력의 횡포를 직접 간접으로 경험하고, 좌절감이나 분노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시간문제로 대니의 진짜 신분은 탄로나게 되고, 탈옥 죄에다 신분위장 죄까지 겹쳐서 종신형을 살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대니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 재판정에서, 그를 동정하는 한 증인이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한다. “저는 감옥에서 억울하게 살해된 니콜라스경과 대니 두 사람을 다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비록 전혀 다른 숲속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무들이지만, 둘 다 견실한 참나무들입니다. 판사님, 생각해 보면 우리들 모두가 출생의 포로로서, 각자 나름대로 응분의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무도 세상에 태어나면서 자신이 일생을 살아갈 시대와 사회와 가정, 지능, 성격, 생김새를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사람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 있다는 이 증인의 말이 이론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철학적인 차원을 벗어나서,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보면, 포로도 포로 나름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졸업을 앞두고 막 성년이 될 시점에 있는 많은 학생들을 보면, 어떤 아이들은 우수한 머리를 타고나서 편안한 환경의 덕으로 순조롭게 학업을 마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태어나서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을 비롯한 수많은 역경을 헤쳐 가며 사는 아이들도 있다.
올해도 대학입학이 마무리되면서, 지금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오다시피 한 운 좋은 아이들에게 뜻밖의 브레이크가 걸리게 되었다.
연간 5만달러라는 엄청난 학비의 일부라도 도움을 받기 위해서 제출한 재정보조신청이 거의 다 ‘No’라는 대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경제 불황 때문에 대학의 재정이 위축되었을 뿐 아니라, 우수한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재정보조를 대폭 늘리면서, 반사적으로 중산층 학생들의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금년에 여러 개의 명문 사립대로부터 입학허가를 받고 한껏 기분이 좋았던 학생 한 명이 아무 대학으로부터도 재정보조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기운이 빠진 채 찾아왔다. 부모의 연수입이 커트라인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얘, 너는 그래도 부모가 학비를 대줄 수 있고, 또 일부 론을 해서라도 학교를 다닐 수 있지 않니? 매달 렌트 내기도 힘든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니?”
“우리 부모도 아직 집 페이먼트 하고 있어요. 또 부모의 수입 여부를 떠나서 나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어요. 중산층 가정에 태어난 것이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지 않아요?”
“매달 렌트 내기도 어려운 가난한 집의 아이들도, 그런 집에 태어나기로 선택한 것은 아니란다. 출생의 선택이 없었다는 것은 너 같은 중산층 아이들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이나 특상류층 아이들이나 다 마찬가지야. 아무래도 불리한 환경에서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선진 문명사회의 특징이 아니겠니?”
여러 해 동안 칼럼을 쓰면서, 나는 공부 잘 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발굴해서 기회를 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미국 대학의 정책에 감탄한다는 말을 여러 번 쓴 적이 있었다. 때로는 특정 그룹의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해서 성적이 훨씬 나은 한인 학생들이 탈락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을 때, 이런 정책은 정말 불공평하다고 못마땅해 한 적도 있었고, 가만히 있어도 전국에서 수재들이 몰려오는 명문 사립대에서, 매년 전국을 방문하면서 저소득층 인재들을 찾으려고 카운슬러 세미나를 여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한 적도 있었다.
일생동안 ‘출생의 포로’로 묶여있을 숨은 인재들을 찾아내어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먼 장래를 바라볼 때 궁극적으로 미국 국익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에 좀 시간이 걸린 것이다.
김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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