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지우산이라는 게 있었다. 대오리로 살을 만들고 기름종이를 발라 만든, 생긴 게 꼭 박쥐 모양을 한 우산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할머니께서 그 우산을 들고 맏손녀인 나를 들판 중간쯤에서 기다리곤 하셨다. 하교 무렵, 난데없이 비가 내리면 대개의 시골 친구들은 망설일 것도 없이, 누굴 기다릴 것도 없이 그 장대비 속으로 달음질쳤다. 마치 들판에 퍼붓는 비를 기다렸다는 듯, 이까짓 비가 대수냐는 듯 친구들은 새들처럼 포르릉 빗속으로 날아갔다.
읍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들어가는 해에 할머니 댁으로 이살 했다. 같은 해에 하나뿐인 고모를 시집보내고 막내삼촌을 군에 보낸 할머니의 맏손녀 사랑은 대단했다. 친구들이 빗속으로 다 달려 나가 버리고 혼자 서있기 민망해진 나는 그 친구들 흉내를 내어 들판으로 내달려 보았다. 들판의 중간쯤에서 만난 할머니의 손에는 지우산이 들려 있었다. 할머니는 이미 비에 젖어 있었고 늘 그 할머니의 베옷에선 쉰 밥풀냄새 같은 게 났다. 빗물을 만난 지우산에서도 젖은 들기름 냄새가 났다. 책보를 받아든 할머니는 뒤서고 난 앞서서 들길을 간다. 들길은 송사리 떼가 사는 봇도랑을 끼고 나있었다. 그 봇도랑은 봄이면 하얀 싸리꽃잎을 실어 나르고 여름이면 빗물을 실어 나르며 온 동네의 농사를 짓게 했다. 비가 내리면 더욱 멀게 느껴지는 마을, 어느새 초가들은 뽀얀 물안개에 젖어 있었고 우산 없이 달음박질친 친구들은 마을의 가장자리에 먼저 도착해 가고 있었다. 질축해진 진창길이 할머니의 하얀 고무신과 내 작은 신발을 잡아당기며 장난질을 쳐댔고 보릿짚 모자를 삿갓처럼 눌러쓴 농부들의 허리께까지 저녁 새가 낮게 날아다녔다.
몸이 홈빡 젖어 대문간을 들어서면 한여름에도 오소소 한기가 느껴지고 나는 가끔 신열이 나며 아프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신 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가 아쉽다 못해 심술이 났다. 빈 양은도시락이 차지하던 그 자전거 뒷자리에 딸아이 하나만을 달랑 싣고 오시지 못하셨던 아버지는 아이들은 여름비에 키가 크는 법이라는 매정한 말씀만 몇 번 하셨다. 아버지의 그 깊은 속내를 알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내가 세 아이들을 키우며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온 세월을 꼽으니 17년이 넘었다. 아직도 막내를 데려다주는 일이 종종 있다. 어쩌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아니 나는 아이가 비를 덜 맞게 하려고 좀 더 이른 시각에 학교 앞에 도착해서 건물 가까이로 찻머리를 기웃거린다. 아이들은 비 맞을 일이 없다. 그래서 맑은 날의 고마움을 모를지도 모른다. 우산 쓸 기회가 없는 아이들은 우산의 온기나 우산의 낭만, 우산의 정서를 모른 채 자라고 있다.
지우산이 없어지고 나는 다시 소읍으로 나와 여중생이 된다. 그때도 갑자기 비가 내리곤 했다. 교문 앞에 우산을 들고 서계시던 분은 할머니가 아닌 어머니였다. 늘 새 우산, 좋은 우산은 딸을 위해 접어든 채 낡거나 우산살 하나 정도가 부러져 있던 우산을 쓰고 계시던 어머니, 언제나 어머니는 낡고 헌 것만을 차지하셨다. 장마에 식구들을 빗물로부터 보호해 주었던 우산들은 맑은 해가 뜨는 날이면 두 개의 빨래줄 사이에, 혹은 키 큰 칸나가 보초 서던 꽃밭 앞에 펼쳐져 말려졌다. 여름햇빛에 탱탱하게 말려진 우산들은 곱게 접혀 다음 우기를 기다리며 깜깜한 창고에 갇혔다.
우산에 대한 그 다음의 기억은 하늘색 비닐우산에 멎는다. 대학 신입생, 첫사랑이 찾아온 시절이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길거리에서 사서 어색하게 펼쳐든 우산, 두 어깨를 가리기엔 좀 작은 감이 있는 그 우산 속에선 빗소리만 토닥거렸다. 새 구두를 신은 발끝이 아프도록 걷고 또 걷다가 조그만 찻집 앞에서 우산을 접으면 접은 우산살 사이로 떨어지던 하얀 꽃잎들, 첫사랑은 그 희디흰 꽃잎처럼 금방 끝이 났다. 첫사랑은 떨어지는 빗방울이 훤히 보이던 그 하늘색 비닐우산을 닮았다. 갑자기 찾아와 수줍게 고개 숙이고 있다가 예기치 않게 불어온 다른 사랑의 바람에 뒤집혀져 못쓰게 되는 나무 우산살처럼, 그래서 하늘색 비닐우산은 첫사랑을 생각나게 한다.
요즈음의 아이들은 여름비를 맞지 않아도 키가 잘 큰다. 우산 속이 아니어도 첫사랑은 지나갈 것이다. 아버지께서 여름비와 키를 연관시켜 말씀하신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난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비 내리던 들판에서 만난 느리게 지나가던 풍경이 나를 자라게 했다. 할머니의 지우산 사랑이 전해지던 그 들길, 봇도랑물이 노래처럼 돌돌돌 길 따라 흘러가고 바람 불면 은빛 볼을 도리질치던 미루나무가 서있던 그 길에서 나는 나무처럼 장대비처럼 자랐다.
반쯤은 젖고 반쯤은 빗물을 가려주던 그 우산이 그립다. 풀기 눅진하던 할머니의 치마폭이 그립다. 지나가는 소나기인지 손녀가 돌아올 때까지 내릴 비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지우산 들고 조촘조촘 들판을 건너오시던 할머니, 누워 있는 손녀에게 박하사탕 하나를 빠스락거리며 입에 까 넣어 주시던 할머니, 그 할머니가 그립다.
지우산도 하나 없이 장대비 속으로 달려 나갔던 내 가난하던 친구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싸리나무 울타리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던 집에서 살던 친구, 토득거리며 떨어지는 샛노란 살구와 보리 섞인 누룽지를 수줍게 내밀던 유난히 말수가 적던 친구, 혼자 메고 다니던 빨간 가방을 막대기로 툭툭 치며 두부장수라고 놀리던 남자아이, 그래서 나도 달칵달칵 뛸 때마다 연필소리가 요란스럽던 책보를 들고 다니게 만들었던 그 짓궂었던 두어 살 위의 까까머리 동창까지 모두의 안부를 물어보고 싶다. 나보다 여름비를 더 많이 맞고 자란 그 친구들은 지금쯤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하나씩의 큰 우산이 되어 있으리라. 빗장 지를 줄 모르는 넉넉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을 품어 주며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내리는 빗물을 그어주는 큰 우산같은 사람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