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 아티스트 - (9) 박주연
박주연(36)은 이번 LA카운티 뮤지엄의 한국현대작가전에 참여하는 12인 중 최연소 작가다. 그래서인지 참신한 작업으로 세계 여러 예술현장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지만, 막상 작가에 대한 자료는 매우 제한돼 있어 기사 작성에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박주연은 비디오와 설치예술을 하면서 사진도 찍고 글도 쓰는 전방위 작가다. 2008년에 ‘행인’이라는 아티스트 북을 출간했는데, 그녀가 터키에 체류했던 3개월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와 여행담을 기록한 이 책은 이스탄불 여름 햇빛의 강한 인상을 바탕으로 제작한 흑백필름 작업 ‘여름빛’이 인사미술공간에서 함께 발표되면서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글과 사진, 영상의 이미지가 결합된 ‘행인’은 뚜렷한 목적 없이 자기 삶을 확인시켜 줄 ‘무엇’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진부한 일상을 행인의 시각으로 묘사한 책으로, 작가는 이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상의 혼란이 우리의 실존적 목마름을 축여주는 잠시의 오아시스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간·언어의 한계 관한 비디오 작품으로 주목
정해진 틀 속에서 우리가 겪는 무기력함 드러내
지난 6년간 인상적인 비디오 설치 작업들로 국내와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아 온 박주연은 움직임(movement, motion)과 언어(language)에 대한 깊은 고찰을 보여 왔다. 이번 라크마 전시에서 소개되는 ‘절충적 수사학’(Eclectic Rhetoric, 2008)과 비디오 작업 ‘모놀로그 모놀로그’(Monologue monologue, 2006)가 그 대표적인 예로, 절충적 수사학은 공간과 시간의 움직임을, 모놀로그는 언어의 한계를 표현하고 있다.
‘절충적 수사학’은 4년간 닫혀 있던 구 서울 역사의 공간적 시간적 간극을 고정된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제시대 때 완공된 서울역 내부의 절충주의적 건축양식을 영상으로 이미지화하면서 서울 역사 외부로부터 밀폐된 공간 내부로 울리는 온갖 소리들(연설, 교인들의 소음, 노숙자들의 찬송가, 열차 안내방송)을 함께 들려줌으로써 버려진 공간과 시간의 존재,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보여주고 있다.
박주연은 한 공간에서 정지된 것과 움직이는 것에 관한 작업을 많이 하는데 새무얼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재해석한 설치작업(‘Full Moon Wish’)이나,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포드 자동차 안에서 30년간 살아온 앤 스미스 여인에 관한 비디오 작업(‘Forget Me Not’), 또한 2004년 갤러리조선에서 선보인 작업(‘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등은 임의적 공간에 스쳐가는 사람들의 미미한 흔적을 포착하고 있다. 특히 ‘모든 것이 제자리에’가 보여주는 가건물, 공원 벤치, 돗자리, 평상들은 사람들이 오며가며 쉬어갈 수 있는 간이역과 같은 곳으로, 박주연은 사람들이 잠시 앉았다가 다시 도시생활 속으로 들어간 여러 흔적들의 레이아웃을 통해 이동과 정착의 중간지대에 머무는 불안정한 흔적들을 포착하고 있다.
‘모놀로그 모놀로그’는 말과 언어에 관한 작품이다. 한국에서 아이리시 강사가 영어를 가르치는 모습과 초보반 한국 학생들이 열심히 입으로만 따라 읽는 모습에서 언어의 본뜻은 사라지고 그 허울만이 남는 현상을 보여준다.
또 다른 동영상 작품 ‘삼인칭 대화’(Third-Person Dialogue)에서는 한 남자가 셀폰과 직장 전화를 번갈아 받으면서 경상도 말과 서울말을 바꿔 써가며 통화한다. 그는 또 국제전화를 거는데 모든 대화가 교환원의 통역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이 남자는 삼인칭의 존재가 되고 그의 의사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 예민한 부분에서 어긋나는 언어의 한계, 소통의 한계를 다루는 작품으로, 대화라는 상황을 통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잘 소통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해진 틀 속에서 우리가 겪는 무기력함을 드러낸다.
김선정 큐레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박주연은 런던에서 15년을 살면서 외국인으로서 겪었던 경험, 언어가 다른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 같은 것들이 언어에 관한 작업을 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언어는 다른 외국어로 번역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언어는 존재의 표현인 동시에 의식을 표현이기도 하고 이 세상과 그 자신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에서 느껴지는 어떤 결여감과 부적절함 때문에 침묵의 언어적 잠재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주연은 1996년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 졸업하고 2001년 런던 예술대학교 세인트 마틴스 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독일 아트페어 ‘아트 퀼른’에 비유럽권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청돼 뉴 탤런트 아트 퀼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로마의 넥스트도어, 마이애미 바젤 등지에서 5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프라하, 이스탄불,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그룹전들과 2006 부산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언어에 관한 작업 ‘모놀로그 모놀로그’
임의적 공간에 사람이 스쳐간 흔적을 포착한 작업 ‘모든 것이 제자리’
디지털로 변형한 사진작업 ‘무제’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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