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명을 준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죽을지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으며, 언제든지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면 더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항상 부딪히면서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곤혹스럽고 괴로워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사실들이 있다. 죽음이 바로 그렇다. 죽음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일은 불편하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태어남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죽음을 포함하지 않은 삶의 묘사는 그래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현명한 사람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루 게릭 병으로 다가오는 죽음 앞에 서 있던 모리 교수가 그랬다. 그는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자에게 깨우쳐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은 서로 맞닿아 있는 한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얼마 전 한국 대법원이 존엄사 관련 판결을 내리면서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택했던 죽음의 방식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그의 서거가 많은 이들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만드는 계기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유언에서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썼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정신이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삶을 잘 살아야 하듯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웰다잉’이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죽음이 ‘나의 일’이 됐을 때 흔히들 보이는 후회의 감정을 피할 수 있으려면 젊고 건강할 때조차도 죽음의 임박성을 의식할 줄 알아야 한다고 웰다잉 주창자들은 강조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매일 아침 시종에게 문밖에서 “대왕도 언젠가 죽습니다”라고 외치게 했듯이 말이다.
웰다잉이 유행이 되면서 유서 쓰기, 관 속에 들어가 보기 등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이런 이벤트 자체가 웰다잉 준비는 아니다. 본질적인 것은 죽음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다.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래야 삶이 환해진다.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의식으로부터 시작해 삶을 완성해 가는 연역적 태도가 곧 웰빙이고 웰다잉이다. 웰빙을 흔히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쯤으로 이해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며 살았더라도 죽음이 급작스럽고 편하지 못하다면 웰빙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고 보면 성공적 웰빙의 마침표는 웰다잉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신문에 한인노인들이 함께 모여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모습이 실렸다. 노인들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이 편하고 깨끗해 보였다. 한국사회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지나치게 금기시 한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우리 민족만큼 상실과 죽음으로 다가섬을 자연의 순환으로 이해한 민족도 드물다.
그래서 선조들은 나이가 들어 잘 보이지 않고 노안이 오는 것은 미물을 죽이지 않기 위한 것으로, 귀가 어두워지는 것은 함부로 다른 이들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 소화기능이 떨어져 밥을 적게 먹어야 하는 것은 상여 메는 이들이 힘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연의 배려로 받아들였다. 웰다잉의 지혜가 그대로 녹아난다.
죽음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종교들은 죽음 후의 삶을 긍정함으로써 위안을 준다. 삶과 죽음을 다루는 학문인 생사학을 창시한 로스 퀴블러 박사는 이것을 애벌레가 죽어 나비가 되는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더 높은 영적 차원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31일 밤 브라질을 떠나 파리로 향해 가다 대서양 위로 떨어진 에어프랑스에 타고 있던 228명은 무엇이 돼 어디로 간 것일까. 비행기 안에서도 뜨거운 삶의 의욕에 충만해 있었을 그들은 과연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순식간에 일어나는 대형 참사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잊을만하면 찾아와 지축을 흔드는 지진 같은 강한 울림을 전해 준다. 졸고 있던 의식의 어깨 위를 내리치는 죽비처럼 말이다. 화들짝 정신이 든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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