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에 관한 소설 중 고전으로 꼽히는 것에 1912년 셜록 홈즈의 창조자 코넌 도일이 쓴 ‘잃어버린 세계’라는 것이 있다. 아직도 공룡이 살아 있는 남미로 탐험을 떠난 일행이 온갖 모험 끝에 다이아몬드를 발견, 부자가 돼 영국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다.
100년 전 코넌 도일이 있었다면 우리 시대에는 마이클 크라이튼이 있다. 얼마 전 작고한 그는 ‘주라기 공원’이란 과학 스릴러를 창조해냈다.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이 작품을 보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룡이 떵떵거리며 호령하던 옛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공룡이 늘 이렇게 컸던 것은 아니다. 2억5,000만 년 전 지구상 생명체의 95%를 날려 버린 ‘펌기 멸종’ 이후 2억3,000만 년 전 지상에 등장한 공룡(dinosaur: ‘무서운 도마뱀’이란 뜻)은 작은 도마뱀 비슷했다. 그러던 것이 그 후 1억6,000만년 동안 활개치고 돌아다니면서 그처럼 커진 것이다.
공룡의 시대는 어느 날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면서 끝나고 말았다. 그 대신 쥐 같은 포유류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작지만 민첩하고 털이 있는 데다 피가 따뜻해 추위에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공룡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깃털 달린 종족은 새로 진화해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GM이 1일 결국 파산을 신청하고 말았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 되고 한 때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GM의 몰락은 기업이 망하느냐 흥하느냐는 크기나 연조와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오로지 변화에 적응하느냐 못하느냐 만이 이를 결정한다.
1908년 GM이 뷰익의 모회사로 출발했을 당시 미 자동차 시장은 선두주자인 포드가 단연 우세했다. 이 해 첫 대량 생산 기법을 이용해 만든 모델 T 개발에 성공한 포드는 이 차가 너무 잘 팔리는 바람에 6년간 광고를 하지 않았다. 한 때는 전 세계 차량의 10%가 포드 차였다.
그러나 GM은 끊임없는 경영 혁신과 모든 미국인 입맛에 맞는 차를 개발함으로써 포드의 아성에 도전, 이를 추월한 것은 물론 50년대에는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 좋은 것이고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정도가 됐다.
그러나 70년대의 석유 파동은 개솔린을 공룡처럼 퍼마시는 GM차가 생쥐 같은 일본차에게 세계 최대인 미 자동차 시장을 내주는 계기가 된다. 1980년 45%에 달하던 GM의 미 시장 점유율은 2008년 22%로 감소했다. GM 노조와 경영진은 정신을 차리고 연비와 성능이 우수한 차를 개발하는 대신 해마다 투쟁과 협상을 통해 직원 임금과 의료비 올리는 일에 몰두한다.
그 결과 자동차 제조 원가 중 철강 값보다 의료비 지출이 많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경영진에서조차 “우리가 자동차 회사를 운영하는지 병원을 운영하는지 모를 정도”라는 자탄이 흘러나왔다. GM이 자동차 회사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한지는 오래 됐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회사인 GMAC 덕이었다. 이 회사가 금융업으로 벌어들이던 돈이 자동차를 팔아 번 돈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던 것이 2007년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여기서마저 대형 손실이 발생하자 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GM은 이번 파산을 통해 뷰익과 셰비, 캐딜락, GMC 등 4개만 남기고 나머지 브랜드는 모두 정리할 계획이다. 공장도 1/3이 문을 닫고 직원도 5만6,000명 중 2만 명을 내보낸다. 경쟁력 없는 회사가 노조에 질질 끌려 다니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가를 이보다 분명히 보여줄 수는 없다.
이미 200억 달러를 지원한 연방 정부는 다시 300억 달러를 더 붓는 조건으로 GM 주식의 60%를 갖기로 했다. 정부의 자동차 회사 소유에 대해 비판도 있지만 정부 도움 없이는 GM의 폐업이 불가피하고 그렇게 되면 100만의 대량 실업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해명이다.
뼈아픈 구조 조정을 통해 GM이 살아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납세자의 혈세가 얼마나 더 들어갈지 아무도 모른다. 과연 GM이 나중에 화석으로 발견되는 공룡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 새롭게 태어날 것인지 500억 달러 이상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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