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했다.
“피는 물보다 짙다. 그러나 피보다 짙은 것은 사상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사상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동족끼리 한반도를 쪼개고 총칼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피보다 짙은 사상은 과연 우리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인가?
조선왕조 500년을 무너트린 사색당파는 우리끼리의 싸움에 피터지게 했고, 대신 외적과의 싸움에는 눈이 멀게 했다. 조선왕조의 사색당파는 현대판 이색당파로 변질된 것 같고 이는 네 편과 내 편으로 더 확실히 나누는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듯하다. 원래 정치적 이데올로기(이념)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허나 한국은 보수와 진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진보를 좌파라 부르고, 심지어는 빨갱이라고도 칭한다. 보수는 우파라 부르며, 심지어 군사독재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치학에서 논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하면, 변화와 가치를 보는 정치적 관점에 따라 5가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세분화 된다. 급진, 진보, 중도, 보수, 그리고 반동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마치 극우파의 반동과 극좌파의 급진의 개념까지 포함하고, 중도 없는 두 양극단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만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한국의 정치 이데올로기의 양극화가 죽고 사는 문제의 원인 제공이 아닌가 싶다. 진보는 변화를 추구하나, 보수는 현상유지를 도모한다. 진보는 인권에 가치를 두고 소득 재분배를 강조하나, 보수는 재산권을 중시하고,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다. 결국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유하기위한 개인과 국가의 다양한 관점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상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사상은 핵전쟁보다 더 파괴력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맞다고 믿는 생각에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것이 옳다 치면, 남의 생각은 모두 적의 생각이다. 그만큼 사상은 정신력이 좌우하는 것이기에 핵전쟁보다 더 무서운가 보다. 자기 생각만 옳은 것이라고 스스로 속고 있는 것조차 모를 때, 이데올로기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회복이며, 선의의 경쟁과 조화 그리고 균형적인 발전이다.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양분된 이데올로기가 국론 분열을 통한 정권 창출의 도구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지도자의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되겠다. 미워하고 갈라서는 대신, 국회가 정당을 떠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 국회로 하나 되기 위해 이데올로기가 죽고 사는 문제로 되면 한국 정치에 희망은 있다. 하나 됨은 한사람의 지도자나 한 정당의 독선에 의한 강압적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는 다수에 의한 자발적 하나 됨을 뜻하는 것이며, 이는 모두가 더불어 사는 길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사상과 이념 앞에 목숨을 내어 놓겠는가. 많은 국민들은 그저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며 아이들을 잘 키울 수만 있다면 하는 소박한 꿈만 갖고 있을 뿐일 것이다. 좌파가 그들에게 행복을 보장한다면 그들은 좌파가 되길 원할 것이고, 우파가 그들에게 행복을 보장한다면 그들은 우파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선량한 국민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정치를 해주는 그들을 믿고 그들의 사상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극단적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것 중의 또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제라 생각한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한국 정치사에 존경받는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요청된다. 따라서 헌법의 개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대통령 단임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지금은 단임제로 인한 부패방지를 위해 대통령 중임제가 적격이다. 대통령 연임제는 또 다른 장기 집권의 우려가 있으므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기회가 있는 대통령 중임제가 가장 바람직하다.
미국 대통령은 대법원장 앞에서 선서하나 한국 대통령은 영도자적 위치에 있기에 불특정 다수 국민 앞에 혼자 선서한다. 이런 상징적인 선서 방식부터 바꾸어서, 대통령을 국민 앞에서 낮추는 작업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새로운 법제도를 도입할 때는 그 제도에 담긴 정치적 문화까지 답습하여야 혼란이 없다. 진정한 삼권분립에 의한 대통령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헌법 개정은 분명 한국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통일에 한몫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 되지 못한 통일은 위험한 것이고, 보수와 진보가 타협하고 서로의 좋은 점을 찾아 국가라는 큰 그릇을 먼저 봐야한다. 오늘의 남의 실수를 거울삼아 내일의 나를 볼 수 있는 큰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그만큼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우리의 국민성 중 아주 좋은 면이 있다. 한사람의 불행을 결코 남의 불행으로만 여기지 않고, 같이 아파하며 슬퍼한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 하나가 된 것 같은 조국 대한민국이 이제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 미래의 희망찬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좋은 조언에 귀를 열고 마음도 열어 사상을 초월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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