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우승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으로 대한민국은 하향평준화 됐다.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키웠다. 자기 수준의 대통령을 뽑음으로써 자기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자위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선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비주류 노무현이 선거혁명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자 한 보수신문은 이런 내용의 칼럼을 통해 그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드러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차마 정론을 표방하는 언론에 실린 것이라 생각하기 힘든 비유와 표현까지 써가며 깎아 내리려 했을까. 노무현을 뽑은 국민들까지 싸잡아 비하하며 화풀이를 해댔다.
노무현은 정치 역정 내내 주류 보수와 불화했다. 힘 앞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의 존재는 보수가 가장 소중한 가치로 숭배하는 질서와 위계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더할 수 없이 미천한 출신이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는 사실부터 마뜩치 않았다. 거기에다 그의 언사에는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도발성이 있었다. 그런 그가 대통령에 올랐을 때 보수가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들 눈에 ‘깜냥이 되지 않는’ 인물이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보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외침이 유행가 가사로만 끝나지 않고 정말 가능한 일이라는, 오바마의 ‘아메리칸 드림’ 못지않은 ‘코리안 드림’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었던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이런 이유로 일부 비뚤어진 보수에 의해 오히려 능멸의 소재가 됐다.
여러 사람이 멀쩡한 사람 하나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특히 여론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말한 이가 의도한 의미의 왜곡, 앞 뒤 콘텍스트 싹둑 잘라내고 특정 부분 부각시키기 등은 전형적인 기법이다.
그러나 노무현이 끊임없이 보수의 공격을 받은 보다 큰 이유는 그가 표방해 온 진보노선이 실제적인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크게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극단적 진보와 달리 노무현의 노선은 국민들과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잠재적 대중성은 보수로서 한시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었다.
노무현의 등장 후 그에게 퍼부어지는 혹독한 공격을 지켜보면서 확인한 것은 한국사회, 특히 권력기관들 속에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일본군 하사관 멘탈리티’였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혹독하게 구는 기회주의가 그것이다. 되지도 않는 깜냥에 총칼 앞세워 대통령 된 인간들 앞에서는 설설 기고 제왕적 권위를 내던진 만만한 대통령 앞에서는 하이에나로 돌변하는 이중적 태도는 나라의 정신이 바로 서는 것을 막아왔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데 따른 대가다.
노무현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던 지난 4월 중순 ‘노무현 때리기 넘어서야’ 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검찰의 수사가 노무현 한 사람 잡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로부터 배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고 얼마 되지도 않아 이번 비극이 발생했다. 노무현의 홀연한 죽음으로 슬픔과 분노, 그리고 혼란의 감정이 온 나라를 휘감고 있다.
노무현의 비극은 충격적이지만 감정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무현은 짧은 유서에서 “원망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떠났다. 가족뿐 아니라 그를 사랑하고 따르던 지지자들에게도 남긴 당부라 생각한다. 자신의 죽음이 증오의 악순환을 부추기는 일이 되는 것을 그는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는 좀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 노무현 서거 소식이 전해진 후 일부 극보수 인사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분노를 넘어 서글픔을 안겨준다. 인간의 얼굴을 상실한 이념은 추해 보인다. 부끄러움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비극은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거대한 담론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당장은 고통스러울지라도 보다 성숙하고 인간적인 사회로 발돋움 하고 사법제도 등 시스템도 한 단계 더 선진화 시키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현명한 민족과 개인은 비극 속에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낸다.
그는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아오르고 큰 물고기는 물길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파란 많은 인생역정 고비 고비에서 시류를 거스르는 승부수를 던져 온 노무현. 그는 자신의 몸을 부엉이 바위 밑으로 던짐으로써 생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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