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 태어나 제일 먼저 만난 남자는 바로 아버지이다. 그 아버지는 남자 중에 제일 키가 크고, 제일 무섭고, 그리고 제일 가깝기도 하면서 늘 멀게만 느껴지는 어려운 남자로 머물러 있다. 그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아니 이미 중년의 나이가 들었어도 늘 어리기만 한 아들에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첫사랑의 남자이다.
나의 아버지는 사장도 아니었고, 공무원도 아니었고, 선생님도 아니었고, 또한 신사도 아니었다. 서해바다 최북단의 섬 백령도를 둘러 감싸고 있는 바다의 싱그러움과 바다 바람의 시원함이 함께 어우러진 전형적 바다 사람이셨다. 육지에서 태어난 같은 시대의 동갑내기들이 공부를 하고 세칭 출세를 고민하고 있는 동안 그런 복잡한 세계와는 동떨어진 또 하나의 조용한 마을 속에 파묻혀 마치 우물속의 개구리처럼 자신이 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운명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작은 사람이셨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나의 아버지는 나의 자랑이기 보다는 부끄러움 이었고, 그로 인해 나마저 초라해지는 듯했다. 아버지의 직업란에 아버지를 자랑할 만한 특별한 것이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자식에 대해서 늘 바라만 보셨던 아버지셨다. 말을 많이 하시거나 간섭하시는 아버지보다는 그냥 아버지로서 그 자리에 계시면서 자신의 삶으로 아버지로서 아버지의 살아계심과 자식에 대한 의지가 되신 분이셨다.
맨손으로 몸으로 일하신 아버지는 37세에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오셨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으셨기에 닥치는 대로 몸으로 일하셨다. 그러던 중 제재소에서 원목을 켜면 원목에서 나오는 톱밥을 인천 시내의 몇 목욕탕에 납품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당시까지는 목욕탕 보일러의 연료가 톱밥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제재소에서 나오는 각종 나무의 부스러기 재료들을 모아서 당시 유명한 합판을 만드는 회사에 납품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셨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아버지가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으셨을 뿐 아니라 그럴 재주도 없으셨다. 그렇다고 욕심도 없으신 분이셨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불평 중의 하나는 남을 위해서 쓰는 마음만큼 집에 있는 식구들을 위해 신경 좀 써달라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세 번씩이나 실패를 하셨다. 그런데도 다시 일어서고 다시 일어나셨다. 신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아버지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축복을 더 하셨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는 하나님을 더욱 더 알게 되었고 목사 아들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목사의 아버지가 되려는 신앙적인 삶으로 돌아서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친구가 아니었고, 교사도 아니었고, 지도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가장 고마운 분이고, 나의 마음에 늘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랑의 헌신자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며, 실패가 없으신 분이시다. 결코 무능하지도 않으시며, 결코 부족하거나 수치스러운 분이 아니시다. 나의 아버지는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지만 우리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 나의 아버지는 미국에 있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시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볼 뿐 아니라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시며, 우리의 인생에 놀라운 계획을 세워 놓으셨다. 우리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주시고, 우리에게 전혀 필요치 않으시면 침묵하시고, 나중에 주기를 원하시면 우리로 하여금 기다림을 배우게 하신다.
한 주일에 한 번씩 한국에 계신 전화를 드리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전화 줘서 고맙다. 네가 편하면 나도 편하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희들이나 잘 지내라” 모든 것을 다 자식에게 주고서도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 없는 아버지의 그 한결같은 사랑의 마음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실 아버지, 그러나 그 아버지의 자리를 늘 채워주시는 우리의 하나님, 그 분이 있어 또한 든든하다. 그래서 오늘도 살아계신 아버지께 이렇게 문안인사 드린다. “아버지, 저 아버지의 아들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영원히 나를 지켜 주실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과 감사의 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편89:시편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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