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먹고 사는 문제가 힘들어지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큰 지출은 물론이고 예전 같았으면 별 생각 없이 집행했을 지출도 꼼꼼히 살펴보고 꼭 필요한 것인지 따진다. 스타벅스가 고전하고 맥도널드 커피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이런 추세를 그대로 반영한다.
금융 중심가에 스타벅스 커피 샵의 밀집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금융위기의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는 재미있는 분석도 있다.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에 끼어 있던 허위의식(단지 가격만이 아닌)의 거품을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런 절약 추세 속에서 그 지혜를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주변과 나누려는 사람들 또한 늘고 있다. 언론들은 미국인들의 절약 풍속도를 앞 다투어 소개하고 있으며 일부 신문은 온라인에 독자들이 들려주는 절약요령을 모아 소개하는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뉴욕타임스의 ‘더 적게 가지고 살아가기’(Living with Less)이다. 이 사이트에는 독자들의 수많은 제언이 올라와 있다.
도시락 싸가기와 커피 안 사먹기, 케이블 취소, 쿠폰 사용 같은 사소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자잘한 제언들이 빼곡하다. 그런가 하면 제법 심오하고 철학적인 충고도 눈에 뜨인다. ‘필요’와 ‘욕구’를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이 그중 하나이다. 사실 지출명세서를 펴 놓고 하나하나 따져가다 보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단지 한 순간의 욕구 때문에 충동적으로 사들인 물건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곤 한다.
이런 지출상의 누수만 피해도 훨씬 적은 것을 가지고 더 풍요롭게 사는 일이 가능하며 이것을 일시적인 태도의 변화가 아니라 지속적인 라이프스타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레스니스’(Lessness) 정신이다. 레스니스는 ‘더 적게’를 뜻하는 ‘Less’를 명사화 한 것이다. 더 적게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 말은 캐나다 소설가인 더글러스 쿠플랜드가 그의 소설 ‘X세대’에서 처음 사용한 후 널리 쓰여지기 시작했다. 레스니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발성이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적게 원하고 적게 소유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삶을 즐기는 태도가 뒤따라야 한다.
사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이런 레스니스의 태도를 지속적인 가치로 체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현 경제위기를 부른 탐욕에 대한 반작용과 성찰의 결과로 레스니스의 가치가 부각되면서 차제에 이것을 하나의 정신운동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속성과 사고방식이 레스니스의 생활화를 방해한다. 사람의 뇌를 찍어 보면 이것이 금방 드러난다. MRI로 뇌를 촬영해 보면 아주 화려한 구두와 의류 같은 것을 보았을 때는 뇌가 즉각 활성화 반응을 보이는 반면 저축이나 절약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눌 때는 뇌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이처럼 아끼기보다는 우선 쓰고 싶어 하는 것이 보편적인 속성이다.
또 미국인들을 상대로 의식 조사를 해 보면 대다수가 다른 사람들은 과소비를 한다고 개탄하면서도 자기는 그 부류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의식의 또 다른 전형이다. 왜 레스니스를 라이프스타일로 만들기 힘든지 조금 설명이 된다.
종교의 힘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습관이다. 지금은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내핍을 감수한다지만 조금만 사정이 나아지면 곧바로 과거의 소비습관으로 돌아갈 개연성이 높다. 몸이 아플 때는 못 먹거나 덜 먹다가 몸이 회복되면 곧 바로 과식과 과다 영양섭취의 나쁜 습관으로 쉽게 되돌아가듯 말이다.
장기적으로 건강해 지려면 습관을 바꿔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몸의 산화를 억제해 건강 체질을 만들어 주는 가장 좋은 습관은 소식이다. 레스니스는 소식과 같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소비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인 삶의 부식을 늦춰주는 작용을 한다.
지난 주 발표된 ‘대한민국 상위 1% 부자들의 행복도 조사’에서 이들의 행복도가 전체 9개 소득계층 가운데 4번째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행복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약간은 비자발적 레스니스이긴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되돌아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지 아니면 삶의 모드를 리셋 하는 계기로 만들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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