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숲속은 지극히 평화로워 보인다. 새는 지저귀고 햇볕은 따스하며 산들바람은 이마에 난 땀방울을 식혀준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보면 그렇게 한가하지만은 않음을 곧 알게 된다. 나뭇잎들은 한줌이라도 햇볕을 더 받기 위해 소리 없는 경쟁을 벌이고 그 잎을 애벌레가 갉아먹고 있다. 참새는 나뭇가지에 앉아 벌레를 노리고 매는 공중에서 참새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먹고 먹히는 이런 생물 간의 치열한 투쟁이 석가모니로 하여금 왕위를 버리고 붉은 먼지 사이를 헤매게 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다른 생명체만이 아니다. 애리조나의 분화구가 보여주듯 46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한 이래 생명체는 주기적으로 집중적인 운석 세례를 받아왔다. 2억3,000여만 년 전부터 1억년이 넘게 지구를 호령하던 공룡들이 6,500만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유카탄 앞바다에 떨어진 운석 때문에 멸종했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명체가 집단으로 사망한 것도 그 때가 처음이 아니다. 공룡 출현 직전인 ‘펌 기’에는 지구 생명체의 96%가 멸종했다(Permian Extinction). 이때는 화산 대폭발이 그 주원인이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겉보기에 평화로운 지구 표면 밑바닥은 용암으로 들끓고 있다. 이것이 지표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화산 폭발이다. 물이 끓어오를 때 표면에 이르면 양쪽으로 퍼지듯이 마그마가 지구 밑바닥에서 끓어올라 지표에 닿으면 양쪽으로 퍼져 나가며 이와 함께 지각도 움직인다. 이 때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조각판들이 서로 부딪치며 일어나는 것이 지진이다.
2억 5,000만 년 전 한데 붙어 있는 거대한 대륙이 지금처럼 조각조각 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아메리카와 유럽-아프리카의 거리는 매년 빠를 때는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160mm), 느릴 때는 손톱 자라는 속도(40mm)로 멀어지고 있다. 이를 처음 밝혀낸 독일의 기상학자 알프레드 베게너는 두 대륙 해안가 화석이 같고 해안선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데 착안, ‘대륙 이동설’을 주장했다 동료들의 비웃음만 샀다. 허탈한 심정으로 그린랜드로 탐험에 나선 그는 50세를 일기로 동사하고 만다.
지구 내부 마그마가 끓기를 중단하지 않는 한 지진은 중단되지 않는다. 지금도 매년 리히터 진도 8도 이상의 초강진이 1번, 7에서 7.9의 강진이 18번 일어난다. 이 수치는 지난 100년간 거의 변함이 없다.
지진을 생각하면 마그마가 식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그러면 더 큰일이 난다. 남극과 북극을 잇는 지구의 자장은 이 마그마의 운동 결과 생겨난 것이다. 이 자장은 지구의 생명체를 태양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립자인 태양풍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마그마가 멈추고 자장이 없어지면 대기는 태양풍에 쓸려 사라지며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화성에 대기가 사라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7일 저녁 진도 4.7의 지진이 남가주를 찾아왔다. 이번 지진은 1920년 남가주를 강타한 뉴포트 잉글웃 지진대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1933년 역시 이곳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가주 사상 두 번째로 많은 115명이 사망했다. 지진 대비 남가주 건축법이 강화된 것은 이 때부터다. 지구상에 발생하는 지진의 90%가 태평양 연안에서 일어난다. 남가주에서 대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내일이냐 100년 후냐만 모르지 거의 확실하다.
석가모니는 인생을 들판에 나갔다 미친 코끼리를 만난 사람에 비유했다. 그는 도망쳐 가다 우물로 뻗어 내려간 등나무 넝쿨을 잡고 들어가 간신히 몸을 피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용 한 마리가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거기다 잡고 있는 등나무 넝쿨을 흰쥐와 검정 쥐가 번갈아 가며 쏘는 것이 아닌가. 그 때 우물가에서 몇 마리 꿀벌들이 집을 짓느라 날며 꿀방울 몇 개를 떨어뜨렸다. 그 상황에서 그는 그 단맛에 도취돼 모든 것을 잊고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었다.
몇 십 억 년이 지나면 태양은 차디차게 식고 지구 위 모든 생명체도 사라진다. 지금까지 지구에 닥친 재난이나 앞으로 닥칠 재난에 비하면 작은 지진이나 지금의 불경기는 걱정거리에 속하지도 않는다. 사방을 둘러봐도 위험뿐인 세상에서 하루하루의 기쁨에 만족하며 사는 존재, 그것이 인간인가 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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