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 아티스트 - (6) 김수자
김수자에게 인생은 ‘보따리’다. 태어날 때 아기를 싸는 보로부터 죽을 때 시신을 덮는 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수많은 보따리를 싸고 묶고 풀고 다시 쌈의 연속이며 우리는 수많은 보따리를 이고 지고 안고 들고 끌고 살아간다. 김수자는 또한 ‘바늘여인’이다. 세상은 거대한 천이요, 그녀의 몸과 마음은 그 천보자기를 꿰매어 잇는 바늘이 되어 인류의 다양한 군상들에게 평화와 안정을 전해주는 신비한 기운을 만들어낸다.
여성과 삶 조망하는 가장 한국적인 작가
‘보따리(Bottari) 작가’로 불리는 김수자는 한국인의 생활소품인 이불보와 보따리를 독특한 조형언어로 도입하여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선 중견 여성작가다. 알록달록한 보따리를 늘어놓는 설치작업, 보따리를 트럭 가득 싣고 떠나는 퍼포먼스, 작가 자신의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한 비디오 작품 등으로 한해에도 수차례씩 세계의 주요 미술관과 전시장에서 초대전을 가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각광받는 김수자의 작업에 대해 비평가들은 “여성의 문제, 삶과 예술, 소통과 관계의 문제, 시간성,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유목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문제 등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는 작업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 미술계의 주요 담론들이 융해되어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 김수자는 천과 바늘로 시작했다. 1983년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다가 바느질이라는 여성의 일상적인 가사가 예술작업이었음을 깨달은 그녀는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매체로 캔버스와 붓을 천과 바늘로 대체했다. 그때부터 천을 꿰맨 다양한 콜라주 작품을 만들던 그녀는 약 10년 후인 1992년 뉴욕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위해 쌓아 두었던 헌옷 보따리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따리의 생명력과 표현력을 발견하게 된다. 보따리가 싸고 묶고 풀고 다시 싸는 단순한 천이 아니라 삶과 혼이 배어있는 존재로서의 보따리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녀의 꿰매기 작업은 싸기 작업으로, 일회성의 평면과 입체작품은 설치와 행위예술로 전환한다. 그리고 1994년부터 보따리 작업과 병행하여 시도한 비디오 작업은 그의 예술을 한층 보편적이고 개념화시켰다. 그녀에게 보따리는 천과 바늘이 생략된 ‘개념적인 바느질’ 작업이며, 영상으로 기록하는 비디오 작업은 ‘이미지의 보따리’라는 점에서 꿰매기와 싸기는 김수자 작업의 기초를 형성한다.
이번 라크마 전시회는 김수자의 멀티채널 비디오작품 ‘바늘여인’(A Needle Woman 2005)을 보여준다. 이것은 김수자가 1999년부터 작업해온 퍼포먼스로, 세계의 대도시들을 방문해 가장 복잡한 시내 한복판에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 자신의 뒷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정면의 한 지점을 응시하며 꼼짝 않고 서있는 아시안 여성을 지나치는 수많은 인파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그녀는 처음에 도쿄, 뉴욕, 런던, 델리, 멕시코시티 등지에서 작업했으며 나중에는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인 아바나(쿠바), 리오데 자네이로, 예루살렘, 산냐(예멘), 파탄(네팔) 등지에서도 똑같은 작업을 했다.
김수자는 김선정 큐레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그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거대한 파도에 맞서듯이 나의 몸은 거리의 한 가운데서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노출돼 있었고 이렇게 강렬한 대치 과정에서 나의 몸과 마음은 점차 다른 경지로 초월해갔다. 고립무아의 상태로 몰입돼감에 따라 나의 몸은 점점 군중들에 의해 지워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몸을 지탱하는 부동자세는 나를 평화와 균형의 상태로 이끌어감으로써 자아와 타인 사이의 긴장 상태를 지나 다른 이들의 숨을 나 자신의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의 가슴은 서서히 오늘을 사는 모든 인류에 대한 애정과 연민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나는 지평선 너머의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밝은 흰색의 아우라를 보았고 신비하고 초월적인 경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행위에서 그녀는 자신이 인류라는 천의 안팍을 꿰매는 바늘이 된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가 하나의 바늘로 인해 이어지는 평화를 꿈꾸는 작업, 온 인류를 싸매어 포용하려는 보따리 작업의 연장이다.
김수자는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서 수학했으며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이스탄불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시드니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아시아-태평양 트리엔날레 등 수많은 국제전에 참가했다. 1990년대 이후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많이 전시하고 있으며 뉴욕 P.S.1/MOMA 미술관, 비엔나 쿤스트할레 등 세계의 권위 있는 전시에서 수없이 소개되고 있다.
2005년에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빌딩 전광판에서 그의 비디오 작품들이 3개월 동안 상영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홈페이지(www.kimsooja.com)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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