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1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사진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사진전이 열린다.
‘인간가족’전(The Family of Man).
룩셈부르그 출신의 예술, 광고 사진가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으로 근무하며 이전 몇 번의 전쟁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열었으나 아직 전쟁의 상처들이 아물지 않은 시대에 사람들은 전쟁 사진전을 보며 다시 암울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냉전체제로 접어들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스타이켄은 다시 전쟁의 비참함을 알리려고 1951년 ‘사진으로 보는 전쟁의 충격’(Korea: The Impact of War in Photography)을 기획하지만 사람들은 인간과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이미지에 지쳐 있었다.
이에 스타이켄은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사진전을 구상하던 중 링컨 대통령의 전기 중에 인간가족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이 문구를 전시회의 제목으로 선정하고 준비를 시작한다. 3년의 준비기간에 수만 장의 사진을 검토하며 세계 각국에서 273명의 작가의 작품 503점을 최종 선정했다. 전시장의 벽과 바닥, 기둥 심지어 천장까지 이러한 자유로운 작품배치와 공간 설정은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짝을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어쩌면 단순할 것 같은 이 진리 속에 담겨 있는 행복, 사랑, 분노 그리고 좌절 이 모든 것을 한 공간 안으로 끌어 들이는데 성공 하였다. 공간과 환경은 다를지라도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한 가족이라는 이념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사의 반복을 영상언어로 보여준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1957년 경복궁 미술관에서도 전시되었고 세계도시를 순회하며 약 700만명이 관람하였다니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관람객의 숫자였을 것이다. 그 후 인간가족전은 책으로도 출판되어 사진 역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존경받는 원로 사진가 최민식 선생의 오래 전 발간된 어느 사진집 서문에서도 “내 인생의 기초를 낳은 사진철학, 인간가족이 정신면에 미치게 한 영향은 매우 크다”고 밝혔다.
전시장에서의 감동만큼은 아니겠지만 창세기 1장3절 말씀과 윈 블록(Wynn Bullock)의 일출사진으로 시작하여 유진 스미스(Eugene Smith)의 ‘낙원으로 가는 길’ 두 명의 어린아이가 어두운 숲을 빠져나가는 미래지향적인 사진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책은 그 전시를 직접 관람하지 못한 후세대인 우리들이 몇 번을 다시 보아도 감동적이다.
이 귀한 책 한 권이 내 작업실 책장에 플래스틱 랩으로 거의 진공포장에 가깝게 꽁꽁 싸여 꽂혀 있다. 가끔 책을 들쳐보고 매번 랩으로 포장하여 다시 꽂아놓곤 한다. 이렇게 보관한 덕분인지 전시회가 열릴 당시 발행된 50년이 훨씬 넘은 세월에도 거의 새 책 수준으로 남아 있다. 내 사진 관련 모든 것 중에 보물 1호라고 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정말 사랑한다.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감동적인 작품들과 역사적 가치, 사진하는 사람으로 이 책 한 권쯤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 이런 이유만으로도 이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충분한 조건이 되겠지만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이 책은 LA에 살고 계시는 존경하는 원로사진가 선배님으로부터 받은 귀한 선물이며, 선배님께서 책 표지 뒤 하얀 공간에 적어주신 말씀이 이 ‘인간가족’ 전체의 사진에서 받는 감동만큼이나 나의 마음속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형, 귀한 인간가족 사진집을 우연한 기회에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참된 생활을 그린 사진이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한국동란 당시 우리 민족의 고통스런 상황이 수록되어 더욱 뜻 깊게 생각합니다. 좋은 것은 친구에게 나누어줄 수 있어 더욱 좋은 것이지요. 사진창작에 더욱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벌써 뵈온 지 한두 해가 넘어버린 것 같다. 이제 팔순을 훨씬 넘기셨을 노 선배님이 오늘 많이 뵙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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