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배 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땅으로
1938년 11월19일 석용진
일기는 맑고 깨끗했다. 기선이 상오중으로 떠나지 않는다는 발표가 있자 마음 놓고 즐기고 이야기하며 밤낮을 보낼 수 있었다. 청산녹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배에서의 생활은 단조로웠다.중국 선원들이 밥은 해줬지만 반찬은 우리들이 해결해야 했다. 된장, 고추장 같은 짠 반찬을 해서 밥을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식사를 하고, 풍경을 바라보고, 흥이 나면 선상의 이백여 식구가 끼리끼리 모여앉아 이야기하고. 우리는 부평초와 같은 신세였다. 흐르고, 쉬어 머물고…
1938년 11월21일
아침에 유주를 향해 배는 떠났다. 일기는 여전히 온화했고 제시도 잘 놀고 있다. 저녁 6시30분경에 상현에 도착하여 밤을 지나게 되기에 하선하여 시가를 구경하고 저녁도 사먹고 돌아왔다.
1938년 11월24일 리행선 선상에서
일기는 퍽 온화했다. 아침에 떠나서 이삼리를 쉬지 않고 가고는 여울에 걸려서 더 가지를 못하고 섰다. 여울은 위험하기도 하고 우리는 피난길을 더욱 멀고 길게 만들지만 오늘처럼 멈춘 배 위에서는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고도 있다. 오늘은 마침 음력 10월3일 개천절이다. 개천절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제의 침탈이 대두되면서부터다. 단군시조를 중심으로 한민족으로 내려온 우리 동포들. 우리 동포의 하나 됨과 자부심을 일깨우는 개천절은 임정 인사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남다른 축제일이다.
1938년 11월28일 리행선에서
이른 아침부터 배 끌어올리기를 시작했는데 상상 외로 진행이 빨랐다. 무거운 배를 끌어 올라자니 죽어가는 형용의 목소리로 고함치는 사공의 모양이 불쌍했다. 유주로 가는 이 여행이 얼마나 더 계속돼야 할까?
1938년 11월29일 리행선에서
이른 아침부터 계속하여 배를 끌어올렸는데 바람과 물결이 퍽 순하여 가는 길이 빨랐다. 그러나 목적지를 약 오리쯤 남겨 놓고 밤을 지내게 됐다. 멀고 먼 수륙여행을 마치고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는 것을 아는지 제시도 큰 웃음을 치며 잘 놀고 있다. 저녁에는 미숙 선생과 여러 사람의 신구곡 노래가 강가에 울려 퍼졌다. 이 순간 모두의 마음속에 바라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나의 조국, 조선을 당당하게 우리의 손으로 찾아내는 것. 일본의 억지 같은 강점에서 고향을 되찾아 자랑스레 고향에서 살아나가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린 일, 조국에서 살기 위해 먼 타국을 전전하면서도 우리에겐 그 소망과 과제가 있기에 고개를 들고 산다. 나라 잃은 민족이 아니라 나라를 되찾으려는 열정의 민족으로 살고 있기에 낯선 중국인의 눈짓 한번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서강 상류의 죽림이 조용하게 우거진 사이로 어느새 반공의 초생 반월이 흘러가는 푸른 물 위의 한 줄기 빛으로 변해있다.
1938년 11월30일 유주
오늘로 한 달 열흘 동안의 배 위에서의 생활이 끝났다. 아침 9시쯤 유주에 도착했다. 그러나 지루하고 지쳤던 배 여행의 끝은 어떤 다른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행리를 운반하려 할 때 갑자기 공습경보가 울려와서 모두가 숨을 죽이고 정지해야 했다. 그러다가 겨우 오후 2시가 되어서야 해제가 되어 짐 운반을 시작했다 도착하자마다 우리를 맞이하는 공습경보. 말은 안 하지만 모두들 불안해하는 기색이다.
1938년 12월3일 유주
오후 6시에 ‘하남’ 처소를 옮기게 되었다. 집 없는 어린 나그네가 되었던 제시는 이날 밤 편안히 잘 잤다.
1938년 12월5일 유주
아침 열시쯤 되어 공습경보가 났다. 유주에는 천연동굴이 99개나 뚫어져 있다고 한다. 이곳이 임시 반공호로 이용되고 있는 굴이다. 하지만 이 천연동굴의 단점은 입구에 작탄을 맞으면 그대로 무덤이 된다는 것이지만 일단 공습이 울리고 나면 피난민들에겐 다른 선택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황급히 뒷문 밖으로 나가 5분 거리인 동굴로 갔더니 모두 만원이라 입장을 허락지 않았다. 곧 공습은 있을 것 같은데 갈 곳은 없고 다급한 마음이었다. 급한 대로 제5동굴로 갔더니 다행히 그 속엔 몇 사람 되지 않아 우리 일행이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일본 비행기가 작탄을 수없이 떨어뜨리는 모양이었다. 석굴이 심히 흔들리며 당장 무너지는 듯하고 동굴 안의 상태는 천둥번개 치듯 불빛이 번쩍이며 천장이 내려앉는 듯 작은 돌 부스러기가 자꾸 떨어져 나는 허리를 구부려 제시의 몸을 방어하며 폭탄투하가 멈춰 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몇 십 분이 지나자 폭파하는 소리가 끊어지더니 십여 분 후에 해경이 되었다. 겁에 질린 일행이 머뭇거리며 굴 밖으로 나왔더니 처참한 광경이었다. 우리가 들어 있었던 집 앞뒤, 오른쪽, 왼쪽이 불바다를 이루고 있었고 동굴 문 밖의 넓은 밭에는 작탄이 떨어져 패인 웅덩이가 헤아
릴 수 없이 많았고 참혹하게 된 시신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이날 일본의 잔인한 행동은 인류 역사가 생긴 후 세계 처음으로 꼽히는 참사였다고 한다. 동굴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산 주위 숲속, 나무 밑에 은신하고 있던 피난민들은 일본의 저 비행으로 기관총을 난사 당해 거의 다 죽었다고 한다. 민간인들을 그렇게도 많이, 의도적으로 죽였던 일본의 잔혹한 행동은 훗날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되리라.
1938년 12월16일 유주
오늘 새벽 5시쯤 깨어서 ‘엄마엄마’ 하는 소리를 연 삼사 차례나 계속 부르며 울면서 졸랐는데 ‘엄마’라고 부른 것이 오늘이 처음이었다(태어난 지 5개월째). 엄마라는 소리에 담긴 수많은 의미가 떠오른다. 함께 자고, 함께 울며 나눔과 희생을 행해야 하는 이름.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아기가 ‘엄마’라고 부를 때 엄마가 느끼는 사랑과 책임감. 엄마의 어렵고 힘든 역할이 그 이름. ‘엄마’라는 단어로 순간 녹아버린다. 세상의 거의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조금 전까지 곤하게 잠을 자던 제시가 눈을 번쩍 떴다. 옆에서 제시 옷을 만들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더니 다정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평화로운 꿈나라로 돌아갔다.
1938년 12월22일 유주
아침부터 내리는 보슬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구는 이사를 하게 되었다. 새 집은 집 윗벽을 완전히 쌓아올리지 않아 천장까지는 절반이나 막하지 아니하고, 그렇지 않아도 전쟁 중이라 벽이 막히지 않은 쓸쓸한 방안에 앉아보니 더욱 심경이 착잡하다.
1938년 12월25일 유주
제시 아가는 아빠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마치 태극선 같이 생긴 양철 장난감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흔들면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 장난감을 제시 손에 쥐어줬더니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동안이나 쥐고 흔들며 잘 놀았다. 유일한 제시의 장난감이었다.
1938년 12월27일 유주
아침 11시경에 경보가 울렸다. 하나 뿐인 피난처인 들로 적기를 피해 나갔다. 그곳은 평지지만 공동묘지가 있었다. 우리는 공동묘지 무덤가 양옆으로 바짝 몸을 붙여 누웠다. 나무 밑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기에 우리는 무덤 옆에 제시를 웅크리게 하고 그 위에서 엄마가 제시 몸을 감싸 안은 자세로 몸을 숨겼다. 오늘 누가 폭격의 희생물이 될지 모른다. 공습기가 저공비행을 하고 포탄을 쏘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면 새까맣게 작탄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은 폭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비행기의 방향을 살펴보고 작탄이 떨어지는 반대 방향으로피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작탄은 비행기의 속도 때문에 비행기의 진행 방향
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비행기의 반대 방향은 안전하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되 동시에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요즘 우리는 어느 순간 폭격의 희생물이 될지 알 수 없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아니 매일 매일을 생명을 내어놓는 경험을 하고 있다. 공습이 울리는 그때마다 피난처를 찾아 숨는 그때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1938년 12월31일 유주
다사다난했던 1938년의 마지막 날이다. 감회가 크다. 고국의 부모님께서도 세계 여러 나라 대중과 마찬가지로 다감 다사한 느낌이실 것이다. 오직 제시만이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자라며 놀고 있었다.
아기 키우기
1939년 정월원단, 유주
1939년의 첫날. 이곳 유주의 일기는 명랑치 못하다. 오늘로 제시가 세상에 태어난 지도 햇수로 한 고개를 넘어서게 됐다. 무사히 잘 자라기만 기도드릴 뿐이다.
1939년 1월16일 유주
약 2주나 특별히 주의하여 본 결과 제시의 표현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시장하여 먹고 싶은 때는 눈물을 흘려가며 엉엉 울고, 안아달라는 것은 허리와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눈물도 흘리지 아니하고 ‘에에’ 소리를 낸다. 벌써 전부터 깨어있을 때는 물론이고 잘 때에도 이불을 얼굴에까지 덮어주면 두 팔을 뻗쳐 치워버린다. 많은 발전이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큰 웃음과 높은 소리를 지르며 하루 종일 잘 놀고 있다. 요즘엔 하루하루 아이의 기분이 엄마 아빠의 기분까지 좌우하고 있다.
1939년 1월24일 유주
우리의 생활은 아기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낯선 땅, 낯선 시간 속에서 침울한 바깥 정세에 의해 오락가락해야 하는 풍전등화 같은 처지지만 아기는 바깥 세계와 무관한 듯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먹고 배설하고 제 몸을 관찰하고 시험해보고 안 좋은 자극이 오면 그대로 반응한다.
이 시간, 이 땅에서 아버지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가정이란 보금자리에서 따뜻한 관심과 가슴으로 그저 아이를 지켜주는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선택을 물려주며 어쩔 수 없으니 감수하라고 할 것인가? 아이가 훗날 이국을 떠돌면서 생활했던 이유를 묻는다면 ‘너의 미래를 위해서였다’는 짧은 한마디로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것으로 독립성취라는 간절한 우리의 소원을 담아낼 수 있을까? 그것으로 우리 가족의 이 시간을 담아내고도 남을까?
1939년 2월2일 유주
어제 저녁부터 내리는 비는 점심때까지 그칠 줄을 모르다가 하오가 되어서야 갑작스럽게 햇볕이 내리비치자 제시 아가도 기분이 상쾌해지는지 잘 놀고 있다. 무엇인가 장난감을 찾는 눈치여서 4인치쯤 되는 분홍색 헝겊 조각을 주었더니 받아들고 유심히 보고 만지고 입에 넣어보면서 재미있게 잘 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한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채워줘야 할까! 가진 것보다 가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태어난 지 일곱 달 된 아기가 갖고 있는 그 빈자리가 놀랍고 조심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 더 크고 넓은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심어주고 싶다. 부모인 내가 갖기 못한 것이 그곳에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저 부모 된 이의 욕심일까?
1939년 2월8일 유주
벌써 삼일 째 일기가 맑고 온화해서인지 매일 열시 후에는 경보가 나서 들판으로 나아가곤 한다. 일기가 맑기만 하면 일본군의 비행기가 폭격하러 내려오는 것이 일과다. 하지만 제시는 야외로 나가기만 하면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한잠씩 늘어지게 자는 것이다. 포탄 속에 납작 엎드려 있는 사람들 속에서 새근새근 자는 것을 보니 참 속도 좋은 아이다. 우리 아기에게는 전쟁도 공습도 피해가나보다. 오늘도 역시 아기는 잘 자고 들어왔다.
저녁이 되어서는 제시의 앞이마와 귀밑까지 머리가 자라 덮었음으로 잠든 틈을 타서 깎고 다듬어줬다. 이것이 제시의 두 번째 이발이다. 제시 부모로서의 역할이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마치 거울이 되는 것과 같다. 자식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부모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거울이 깨지면 그 속에 비춰진 모습도 흉하게 일그러진다. 아이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에 대해 눈뜨게 된다.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현재의 모습을 확인하고 미래를 그려본다. 이제 나는 한 아이의 거울이 되어 그 아이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또 깨닫게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첫 딸 제시를 키우며 일본군의 공습을 피해 피난생활을 이어가던 중국 땅에서 만난 동지들과 함께. 원안이 소벽 양우조 선생.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