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일어나서 학교 가는 중. 걱정하지마 엄마 *
*엄마 나 돈 떨어졌어. 미안. 죄송. 감사감사 *
*경기 클래스 가는 중. 엄마 괴롭히는 경기 열심히 배울께. 엄마 화이팅 *
*경기 아니고 경제야. 암튼 너도 화이팅. 밥 꼭 챙겨 먹어라 *
뉴욕에서 대학공부를 하는 딸과의 핸드폰 문자 내용이다. 요즈음 아이와의 소통 수단으로 거의 대부분 이 문자를 사용한다. 아직은 미성숙해 보이는 아이가 완전한 자유 속으로 내보내진 게 염려되어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전화로는 자칫 잔소리풍으로 되기 쉬운 대화가 기록으로 남는 문자로 변형되면 호흡은 짧아져도 전해지는 메시지는 강해지는 것 같다. 학기 초 되풀이하는 엄마의 염려를 한번 한 이야기는 안 해도 된다고 퇴박을 놓더니 비슷한 잔소리지만 문자로 전달하니 건너오는 답도 순해졌다. 또한 문자 저장함에서 가끔 꺼내보는 토막편지들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모두 한국어를 잘하고 또 잘 쓰는 편이다. 물론 어릴 때부터 한국어로 말하지 않으면 우유도 안 주고 밥도 안 줄만치 좀 철저히 가르쳤다. 우리말의 중요성, 모국어의 은밀함, 독립된 우리들의 말로 나누는 그 따뜻한 언어의 정서를 다시 강조해 무엇 하랴. 토요일마다 한국학교에 보내고 저녁마다 일기를 쓰게 시키고 검사하고 틀린 낱말은 열 번씩 되풀이 쓰게 하고 등등의 작업은 쉽지 않았다. 미국학교 선생님이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는 우리가 너무 가엾다고 하셨다며 선생님의 말씀이 곧 진리라고 믿는 아이들의 등을 떠밀기도 쉽지 않았다.
이십여 년 전, 뉴욕에 살 때 만난 어느 분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은 뉴욕이민사회에서 꽤 성공하신 분이었다. 딸 셋 중 맏이의 결혼을 앞둔 어느 날 그분은 촉촉이 젖은 눈으로 초창기 이민사회의 애환과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때늦은 후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오십여 년 전, 초창기의 이민사회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고 여자들의 일터는 십중팔구가 맨해튼의 봉제공장이었다. 동이 트기 훨씬 전에 일어나신 그분은 하루치로는 너무 많다 싶은 먹거리를 만들어 키 작은 밥상에 차려 놓고 아직 자고 있는 너댓살박이들을 뒤로 한 채 문을 잠그고 집을 나서야 하셨다. 아이가 아픈 날은 길거리 공중전화로 일곱 살짜리 큰딸에게 약 먹일 시간을 상기시키고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안고 하루를 보냈다.
그 뒤 미국 성공회 신부님들에게 아이들이 맡겨지면서 아이들이 적응할 때까지 또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전철역 근처에서 낮선 미국신부님의 차에 태워진 아이들은 차창문을 마구 긁어대며 울었다. 전철역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발을 헛디뎠던 기억도 있다고 하셨다. 정말 먹고 살기 바빠 아이들의 교육과 언어는 전적으로 미국의 공교육에 내어주었고 아이들은 아주 기본적인 한국말만 이해하는 상태로 자랐다. 더 작은 아기들인 동생들을 돌보며 웃자란 딸에게 제일 미안하시다고 했다. 이제 그 딸이 자라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엄마를 떠나는데 그 안쓰러웠던 딸의 가슴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하셨다. 결혼생활을 하며 겪을 이런저런 인생사, 삶의 구비마다 기다리고 있을 복병들을 만날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산 같은데 그 깊은 언어를 이해하기엔 딸의 한국어 실력이 너무 짧았다. 결혼하는 언니 방에 모여 세 딸들이 수다 떨며 깔깔대는 소리를 안방에서 건네 들으며 눈물이 솟구쳐 잠을 설쳤노라는 그분의 얼굴은 부슥부슥 부어 있었다.
그때 그 이야기를 눈물 핑 돌며 듣던 내 품엔 복사꽃 같은 두 볼의 딸아이가 안겨 있었다. 그분은 한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자기처럼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아이들에게 영어보다 한국말부터 가르치라고 당부하셨다. 그 뒤 내게 한국말은 눈물로 기억되는 언어이다. 언어는 잃어버리면 길을 잃고 마는 지도 같은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복사본을 하나씩 간직하게 하는 일이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리라. 그 지도를 간직한 아이들과의 공통분모인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닌 인생의 전체를 비춰주는 방향등 같은 것이 아닐까. 지금은 그때처럼 환경이 열악하지도 않고 또 그런 분들의 경험과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어교육기관도 많이 생겨났다. 또 사회 전반에서 모국어를 아는 아이들의 경쟁력이 커져가고 있다.
딸아이의 대학을 뉴욕으로 정하고 품을 떠날 아이의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던 때에 텔레비전에서 한국통신사의 광고를 무심히 보던 중 아, 저거다 싶어 통신사를 바꿨다. 아직 쓰고 있던 통신사와의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적지 않은 위약금까지 지불해야 했지만 딸과의 소통수단을 찾아낸 나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다섯 식구 모두의 핸드폰을 한국 통신사로 바꿔온 날, 영어로 불분명하게 써 있던 지인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입력해 넣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건넌방에 있는 아이들과 한국의 동생에게 문자를 보내보고 또 답문자도 받아보며 아이처럼 신기해했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문화로 착각하고 있는 핸드폰 문자문화에 편승한 엄마를 환영하며 즐거워했다. 나 역시 자꾸 멀어지는 것 같은 아이들에게 한발자국 다가간 것 같아 기분 좋게 늦은 밤잠을 청했다.
내게 모국어의 맛을 묻는다면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식혜의 맛이라 하고 싶다. 하얀 찹쌀 꼬두밥알이 꽃잎처럼 빠져 있고 대숲에 부는 겨울바람에 살얼음이 살짝 얼어 있던 장독대 위의 그 식혜 한 사발, 그 달콤 싸아한 맛 말이다. 생강 향이 살짝 나며 알싸하게 목울대를 넘어가던 그 맛을 어떤 음료수가 흉내 낼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모국어는 그런 맛이리라. 아이들에게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를 들려줄 순 없어도 손톱에 물들이던 봉숭아꽃과 머리핀 같던 채송화가 피었던 장독대의 정서를 보여줄 순 없어도 한 사발 식혜의 맛은 공유하고 싶다.
앙증맞은 음악 한 소절을 울리며 문자가 왔다. 어릴 적에 애칭으로 똥강아지라고 부르면 고개를 도리질 치며 똥이 들어가 있어서 싫다더니 그 똥강아지가 얼마나 감칠맛 나고 정감 있는 말인 줄 깨달았는지 오늘은 이런 문자가 왔다.
*앗싸 시험 끝. 똥강아지는 친구들이랑 영화보러 가여. 어마마마 일찍 주무십시소서. 주무시시소서? 주무십소서? 에구구- 한국말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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