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승 선생 댁에서 식객으로 있을 때 TV에서 나오는 퀴즈 문제를 맞히는데 1등을 세 번 하고도 남을 만큼 박식 총명을 보였지만 평소 그는 지식인 티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일반 대중들 속에 자신을 숨기고 살았다. 지게꾼이나 막일꾼들 틈에 끼어 천 씨로 불리며 그들과 함께 격의 없이 막걸리를 마셨다. 산속으로 숨어 들어 은둔을 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 속에 은둔한 것이나 다름없다.
막걸리 한잔, 한 개비의 담배로 만족하며 살았던 인생.
어느 날 행려병자가 되어 시립병원으로 실려가 자신이 한국에서 유명한 시인 천상병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행려병자들의 횡설수설로 취급되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인들에게 그의 소재가 알려졌을 때는 그가 죽었다 하여 그의 첫 시집 새라는 유고 시집이 나온 후였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의 몸엔 기저귀가 채워져 있었고 기지와 재치로 번득이던 정신도 쇠퇴하여 빛을 잃고 있었다. 그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있던 그에게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는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친구 여동생 목순옥이었다. 오빠와 함께 명동에서 자주 만났던 당대의 문필가요 유명 시인이었던 그가 병원에 그렇게 망가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다.
어느 날 병원 원장은 목순옥에게 충격적인 제의를 했다. 천상병은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평생 동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 도움을 줄 사람은 목순옥 당신뿐인 것 같다고….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천상병은 나이 40이 넘어 총각 신세를 면하였다.
목순옥은 그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온갖 험한 일을 다 하며 천상병을 보호하는 수호신이 되었고 그의 사후에는 천상병 기념관 건립과 천상병 문학상을 제정해 천상병을 기리고 있으니 한 지아비로서 보다도 한 지성에 대한 흠모와 숭상의 표를 다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변절과 비굴로 생존을 구걸하는 세태에 대한 염증과 거대한 군사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에 대하여 스스로 벌을 내린 것이 곧 자학과 생존의 방치였을 것이다.
그 흔하고 흔한 문학상이나 신인상 하나 타본 적 없고 그 따위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세속에 있으면서도 저만치 떨어져 그의 방식대로 살았지만 세상을 주시하는 시선은 거두지 않아 해학과 풍자로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기도 했다.
객기와 파행, 자유로운 영혼의 소요.
막걸리 한 되로 만족하며 그날그날을 살던 그에게 어느 날부터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더니 간경화란 진단이 떨어졌고 임신한 여성의 배처럼 되어서야 그를 고쳐줄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야 이놈아, 이 배가 뭐냐. 임신했냐?” “그래 요놈아, 임신했다. 마누라가 애를 안 낳아서 내가 대신 임신을 했다. 요놈아 요놈아 요놈아.” “깔깔깔” “허허허 그놈 이런 몸을 해 가지고도 사람을 웃길 힘이 있는 모양이구나.” 춘천의 도립병원 원장실에 들어서는 천상병 시인의 얼굴빛은 검은 빛이요 배는 임신 9개월 된 것 같았지만 그의 어린애 같은 천진성은 그대로 살아서 친구인 원장을 웃기고 있었다.
간 경화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형편이 되었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가다가 춘천 도립병원에 원장으로 있는 친구가 병을 고쳐줄 테니 돈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해 병원에 들어서며 친구간의 수인사가 이렇게 시작되었고 천상병 시인은 평생에 처음으로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형식이나 규범을 뛰어 넘는 언행으로 병실은 항상 웃음으로 넘쳐 누가 환자고 의사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술을 먹고 싶다고 간호사나 의사에게 떼를 쓰거나 담배를 몰래 피우다가 의료진에게 걸리면 애들처럼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의 반복되는 언어 습관도 특이해서 처음대하는 사람들은 관심거리였다. 그거 참 좋네! 그거 참 좋네! 그거 참 좋네! 무슨 말이고 한 마디 하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언어습관이 있었지만 의사 표시를 하는 데는 장애가 없었다.
그의 팔목에는 빛바랜 스테인리스 줄이 달린 시계가 채워져 있는데 시간 가는 것이 아까워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시계를 자주 들여다 보았다.
그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병문안을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 없는 민초들이었으니 그의 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가가 확인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도 간간히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그것 자체가 뉴스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끌게 되었고 그의 시들 또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살다가 독일에서 온 친구와 막걸리 한 잔 한 것이 동 백림 간첩사건에 혐의를 받게 되어 6개월이나 정보부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전기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그는 걸음을 똑바로 걷지 못하게 되었고 아이도 낳을 수 없게 되어 자식도 하나 생산하지 못했다. 살벌하고 혹독했던 그 당시 그 사회가 한 시인에 대한 대접이 그 정도였던 것은 맑고 깨끗한 지성, 순수한 영혼이 말살 당하는 비극의 시기였던 것이다.
고문으로 병들고 생존의 방치로 병든 몸을 의탁할 곳을 못 찾다가 친구 중에 의사가 있어 치료를 받아 몸이 완쾌되어 몇 년의 수를 늘렸으니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날 조문객이 몰려들어 적지 않은 부조 돈이 들어와 이 가난뱅이 시인의 집은 그 돈이 주체 곤란이었다. 궁리해낸 것이 아궁이에 넣어두면 제일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신문지에 싸 아궁이에 넣어두었는데 누군가 방이 차다고 그 아궁이에 불을 때 그 부조 돈은 재가 되고 말았다.
저 세상으로 가는 날도 그는 시인답게, 천상병답게 갔다 하여 장안에 화제 거리였다.
김낙영 /시인, 애난데일,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