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살기가 점점 힘이 듭니까, 살수록 몸과 마음도 더 버거워요.“ 요즘 만나는 한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푸념이다. 너도 나도 잘 살기 위해 미국에 왔지만 이민살이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문명이 최첨단을 달리는 세계 최강국 미국에 와 살면서도 우리들의 마음은 왠지 공허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경제가 위기라지만 경제는 아무리 어려워도 옛날 한국에서 겪던 6.25 동란 이후 보릿고개 시절에 비하면 아직도 너무나 고급이고 사치스런 생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점점 힘들어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것일까? 그것은 삶을 지탱해주고 원동력이 되는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의 생활에 이 감동만 있으면 얼마든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감동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지고 삶이 더 각박해지고 있다.
올 들어 벌써 넉 달 새 22명이나 되는 한인이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 최근의 충격적인 보도나 주위에서 계속 이어지는 잔학한 칼부림, 혹은 총격사건, 가족 동반 자살 사건 등은 이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하나뿐인 귀중한 목숨을 이렇게 무참하게 끊는 사건들은 그들의 가슴 속에 한 올이라도 되는 감동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인간의 마음에, 사람들의 생활에 이처럼 감동이 메마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황금만능주의가 갈수록 팽배해지면서 사람들의 가치관이 상실되고 삶에 대한 목적과 희망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소와 할아버지 단 두 배역이 나오는 단조로운 영화 ‘워낭소리’가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인간이 양산한 첨단 문화 속에 철저한 개인주의로 영혼이 찌들어 가는 현실에서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 평생 소를 연인처럼, 친구처럼, 사람처럼, 자연처럼 벗삼아 살아온 할아버지의 소에 대한 우정을 진한 감동으로 그린 워낭소리는 문명에 찌든 인간의 폐부 깊숙히 내재한 영혼을 건드렸다.
얼마 전 47살의 겉늙고 펑퍼짐한 모양의 미혼여성 수잔 보일의 노래가 영국의 ITV 방송이 개최한 탈렌트 쇼에서 전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여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를 돌고 있다. 이 또한 현대문명 사회에서 찌든 사람들의 마음에 색다른 모습으로 각인되면서 벅찬 감동을 일으키며 생겨나는 현상이다. 감동이란 두 글자는 이렇듯 인간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간의 생활을 변모시킨다.
실제로 우리 삶에 조그마한 것이라도 감동이 없다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이 강팍한 세상을 버텨낼까. 우리는 늘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감동의 연속으로 힘들고 버거운 이 세상을 헤쳐 나가고 있다. 감동이란 이 단어는 사실 큰 것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그리
고 사소한 것들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커다란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아니 오히려 큰 것에서는 감동이라는 감격과 즐거움을 더 느끼지 못한다. 아주 소소하고 작은 것일수록 우리는 더 큰 감동과 진한 감격을 느끼곤 한다.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의 화려한 꽃 보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리 있는 외진 곳에 가냘프게 피어있는 꽃이 더 사랑스러운 것과 같다.
우연찮게 거리에서 스친 주변의 미소나 다정하게 건네진 이웃의 한마디는 그날 하루의 삶에 윤활유가 되고 행복감을 주면서 삶에 대한 도전의욕도 갖게 한다. 배우자가 챙겨주는 조그마한 배려, 따뜻한 말들은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 될 이유를 만들어 준다. 화려한 보석이나 옷, 근사한 식당에서의 식사만이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직장 동료나 이웃, 가족 간에 오가는 ‘미안해’‘사랑해’ ‘고마워’ 한 마디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일에 대한 성취욕과 능률을 증가시킨다. 더 진한 가족애와 직장인과 이웃사이에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쌍방 간에 주고받는 조그마한 감동은 서로 간의 마음에 작은 울림으로 다가가 감사하는 인생을 도전하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엄청나게 큰일들이 아니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사소한 것들이 때로는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작은 것
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이유,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주는 커다란 마음, 커다란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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