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이 위험을 인식하는 패턴에 관해 획기적인 발견을 한 사람은 스타라는 이름의 미국 엔지니어였다. 지난 1969년 이 엔지니어는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스키를 타다 사망할 확률보다 낮은데도 대중들은 원자력 사고에 대해 훨씬 큰 공포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또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당시 베트남에서 전투 중 사망할 확률 역시 모터사이클 주행 중 사망 확률과 비슷한데도 젊은 남성들 사이에는 전사에 대한 공포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을 확인했다.
확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 대답은 리스크 전문가들이 고안해 낸 ‘공포도 측정 공식’에 들어있다. 무엇이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가를 오래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모든 요소들을 종합해 공포의 크기를 산출해 내는 공식을 만들어 냈다. ‘공포도=통제 불가능성+비 친숙성+상상 가능성+고통+피해의 규모+부당성’이 그 공식이다.
실제로는 비행기가 훨씬 안전한데도 우리가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비행기 타기를 더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통제 영역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하늘 높이 나는 경험이 별로 친숙하지 않은 탓도 물론 작용한다. 게다가 만약의 경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행기는 차보다 훨씬 오싹함을 안겨준다.
지난 2001년 9.11테러 후 수많은 미국인들이 비행기에 대한 공포 때문에 육상 운송수단을 선택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9.11 이후 2년 간 미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평소보다 무려 2,300여명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악천후 같은 여러 변수를 고려해 산정한 것이다.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에 비행기 대신 자동차를 선택했던 많은 미국인들이 도로 위에서 숨을 거뒀다. 이것은 테러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효과를 거두는지를 잘 보여준다. 테러리스트들은 사람들의 공포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꿰뚫고 있는 부류들이다.
지금 전 세계는 돼지 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로 난리다. 돼지고기를 통해서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과학자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가는 멕시코산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법석들을 피우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150여명이 사망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일부 발병사례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는 아직 없다. 그런데도 돼지 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는 시시각각 커져가고 있다. 언론의 보도가 공포를 확대시키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적인 발병 확률보다 훨씬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돼지 인플루엔자 공포는 ‘통제 불가능성’과 ‘비 친숙성’이 작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우선 돼지 인플루엔자라는 질병 자체가 너무 생소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사스 공포 때와 유사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감염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 그래서 통제감을 갖기 힘들다.
하지만 이번 돼지 인플루엔자 사태를 다루는 연방정부의 대응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 “패닉 상태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안심시키면서도 “돼지 인플루엔자를 전염병으로 간주하고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공격적으로 실질적인 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이 느끼는 공포는 과학과 확률의 논리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움직이는 모습은 아주 중요하다. 과학적인 논거를 너무 앞세우다가는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공포에 사로 잡혀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이런저런 조언들을 모아보면 멕시코 여행은 자제하고 손을 항상 깨끗이 씻고 삼겹살 많이 먹어 영양 보충 충분히 해 주면 돼지 인플루엔자에 걸릴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목숨 보존과 관련한 것이라면 막연히 돼지 인플루엔자 공포에 떨기보다는 주행 시 안전운전에 바짝 신경 쓰는 편이 더 낫다.
“나는 어떤 일이 뉴스에 나오면 그건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뉴스라는 말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니까”라는 한 안전문제 전문가의 유쾌한 지적도 기억해 둘만 하다. 이 전문가의 말마따나 돼지 인플루엔자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차 사고나 가정폭력처럼 너무 흔한 일이 돼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을 때이지 싶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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