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DC 벚꽃축제 때 연일 성황을 이루었던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의 길거리 스시바도, 사께(일본정종) 바도 철수를 했고, 축제 내내 풍물패들이 두들겨댔던 북소리도 사라져갔고, ‘Tidal Basin’ 호수가의 화려했던 벚꽃도 다 졌다. 일본에서도 그 옛날 히데요시(豊信秀吉)가 ‘나나와(오사카)의 영광’을 위해 각지에서 옮겨 심었던 오사카 성내의 거대한 벚꽃 나무의 꽃잎도 이제는 다 떨어졌을 테고, ‘스시’를 손에 딱 거머쥔 나한(羅漢) 상이 경내에 떡 버티고 있어 스시맨이면 꼭 들르고 싶은 토쿄 북쪽 사이다마(琦玉) 현의 소림사의 찬란한 벚꽃도 다 떨어져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가까운 바다에서 잡아 올린 가쓰오(Bonito)를 시작으로 도다리, 사요리(학꽁치), 노래미, 보리새우, 소라, 피조개 등 이 철의 생선과 풋내 나는 산채류와 파릇한 바다내음의 해초류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스시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도쿄의 스끼지(築地) 수산시장에서는 이른 새벽 곧장 시장으로 출근한 주방장들이 다투어 좋은 재료를 확보해 ‘오늘의 생선’을 가지고 스시바로 손님을 유혹할 테고 이곳 우리 스시바도 비록 미식품위생국(FDA)의 생선 취급요령에 의거해 거의 냉동 재료에 의존하지만 우리 바만의 자랑스런 스시로 손님들을 끌어들일 철이다.
70년 초 미 서부지역으로 일본의 스시 셰프들이 본격 상륙하면서 캘리포니아 롤을 비롯해, Spicy, Soft-Shell crab, Smoked-Salmon, Cream cheese, Chili paste 등을 써 미국인 취향을 위한 스시가 개발되면서 이제는 어느 초등학교는 ‘스시의 날’이 생겼고, 트럭 운전수가 햄버거 대신 스시를 To go 해서 장거리 운전길에 나서는 건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대신 도무지 일식이라고 이름 붙이기 민망한 국적 불명의 스시가 스시바마다 얼굴을 내미는 통에 일본스시연맹은 고심스러워 했었지만. 스시를 즐기다보면 결국은 정통 스시 쪽으로 돌아온다는 정설 덕에 미 전역에 스며드는 스시바를 조용히 지켜볼 뿐이며, 대신 해마다 봄이면 동서부에 벚꽃과 더불어 스시 축제를 벌려 스시의 위상을 한껏 높여 놓는 것이다.
1800년대 초 에도 막부 때 선보인 스시가 그 정통성과 맛에 큰 변화 없이 긴 세월을 이어오면서 대중 속에서 꽃피우는 건 스시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마음과 칼을 쥔 스시맨의 긍지와 자부심을 힘껏 밀어준 국력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 친근해서 따로이 애칭까지 붙여가며 사랑받은 스시는 일본을 떠나 국력을 등에 없고 세계의 대중 속을 파고드는 것이다. 벌겋게 단 쇳물과 같다 해서 데까(鐵火) 스시라 부르고, 오이로 만든 스시가 깊은 호수에 사는 전설적인 동물, 하동의 초록색과 같다 해서 가파(河童) 스시라고 부르고, 스시를 포장마차에서 팔던 시절, 부인이 남편을 위해 밤새 쇼가(生姜)을 가는 소리를 빗대서 초생강을 ‘가리’라 부르고, 연어알이나 우니 처럼 김 위에 올려놓은 스시가 배를 닮았다 해서 금깡(軍艦)이라 부르며, 이렇듯 한 쪽의 스시를 먹으면서도 그 애정을 표시하는 것이다.
스시 경연 대회에서 재료의 선택은 자유지만 재료비의 한도를 정해 놓은 건 턱없이 비싼 재료는 결코 대중들이 즐겨 멱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셰프를 도와 밥을 짓고 야채를 다듬는 조수의 행동거지가 점수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는 스시바와 주방과의 돈독한 관계가 아니면 결코 좋은 스시가 만들어지지 않음은 물론 스시맨의 출발이 주방에 있음을 명심시켜 주는 일이기도 하다.
실기시험이 없는 일본처럼 한국도 실기를 없애자고 했다가 온통 주방장들이 붉은 띠를 두르고 결사반대하는 바람에 오늘도 중학졸업의 젊은 애가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일식요리사, 한식요리사 시험을 치루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요식협회를 앞세워 한식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나섰다. 과연 그때가 돼서일까?
2차 대전이 끝나고 처음으로 맥도날드가 일본에 상륙했을 때 불교 문화권의 이 나라에서 기름진 음식이 먹힐까 우려들 했다는데, 일본에서 제일 큰 긴자(銀座)의 미스꼬시(三越) 백화점에 문을 연 맥도날드 가게 앞에 첫날부터 길게 늘어선 행렬을 보고 과연 미국의 국력과 맥도날드의 명성이 어땠냐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은 과연 어느 이름으로 세계화를 꿈꿀까? 툭하면 내세우는 ‘세계화’가 입맛대로 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 용산 미8군에서 흘러나온 햄, 소시지, 베이컨, T-Bone 스테이크가 용산 시장 한구석에서 술꾼들의 안주로 등장한 후 ‘부대찌게’라는 묘한 이름을 얻더니 지금은 동남아로 진출해 호평을 받는다고 한식 홍보팀이 전한다. 슬픈 얘기다.
이 봄철 비록 불경기라지만 활력 있게 스시바를 끌어가자. 힘이 있으면 운도 따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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