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턴에 있는 것들 중 좋은 게 많지만, 좋은 레스토랑들이 수없이 많은 것도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좋은 점이다. 이태리음식, 프랑스음식, 할 것없이 거의 모든 레스토랑들에서 실망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음식들이 너무나 맛이 있다. 좁은 지역에 많은 레스토랑들이 경쟁하니, 남들이 하지 않는 특별한 음식을 하던가, 같은 종류면 다른 곳 보다 특히 맛있게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란 생각을 쭉 해왔었다.
그런데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조셉 엡스틴이 재미있는 진단을 내리는 글을 실으면서, 맨해턴 음식들이 맛이 있는 이유가 다루기 힘들고 별난 뉴요커들 때문이란 진단을 내린 게 너무나 적절해 보인다. 음식주문하면서 까다로운 건 물론이지만, 제대로 내오지 않았다가는 욕을 하고, 또 돌아다니면서 그 음식점 험담을 늘어놓는 정도가 지나쳐서, 딴 도시에서처럼 적당히 했다가는 어느 곳이든 몇 주 버텨내기가 힘들 정도로 터가 세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대학 일로 홍콩의 대학에서 반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것이, 중국음식들 중 광동 음식이 최고란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이유가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교수들에게 들은 그 맛의 역사적 배경이 너무나 처절했다. 절대왕조들의 대장금 노릇을 하려니까, 항상 무슨 새로운 재료로 어떻게 기가 막힌 요리를 해놓지 않으면 목숨이 날아가는 공포분위기에서 그들의 요리솜씨가 중국최고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는 얘기였다.
중국의 궁중만 아니라 일반가정에서도 음식 맛이 좋은 집안의 특징이 있다면, 그 집의 시어머니가 아주 힘든 분들이란 공통점이다. 혹독한 시집살이긴 하지만, 그런 집안에서 단련 받은 며느님들이 제대로 음식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부인이 가정요리학과를 나왔더라도, 남편이 무난한 분이라 항상 “뭐, 된장찌개나 끓이지 이렇게 살아온 집안에 초대된 손님들은 음식에 큰 기대를 안하는 게 좋다.
음식만 아니다. 삼성, LG의 전자제품, 특히 가전제품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이유가 서울의 그 별난 아줌마들의 극성이란 것이 아닌가. 그 힘든 아줌마들의 불평을 극복하려면, 엄청난 품질향상이 되어야하고 AS가 좋아야 한국제품들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 서울에서의 혹독한 과정을 거친 다음엔 세계시장 어디에 진출해도 문제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평통위원 선정과 노인회에 관련된 얘기들로 LA총영사관이 곤욕을 치르느라 시끄럽다. 외교관이 굉장히 힘든 직업이란 건 우리가 잘 보아왔지만, 필자는 남가주 한인사회를 담당하는 영사관보다 힘든 곳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미국 현지동포 언론사들도 그 본사들이 전부 남가주에 있어서 가혹한 여론의 채찍이 항상 가까이 있는데다가, 그 많은 동포사회의 기관장들 어느 한 곳도 만만한 데가 없으니 LA총영사관은 항상 어려운 고객들에게 시달리는 셈이다.
평통위원 선정 때처럼 큰일이 있을 때마다 본국주무부처와 청와대에 들어가는 투서들과 험담, 그 뒷감당을 하려면 총영사관이 딴 일들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본국에서도 이런 사항들은 민원사항이니 제대로 그 뒤처리를 해야 할 것이고, 그러니 관련부서 모두가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는 처지일 것이다.
우리 이럴 수는 없을까. 동포사회에서 문제가 있어서 크게 떠들고 싶으면 동포언론사들에 알려서 여론화 시키고, 총영사관에서 거기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하고, 거기에 좀 불만이 있더라도 각자의 평판과 품위를 지켜서 성숙한 동포사회의 토론문화가 그것을 담당하도록 둘 수는 없을까. 남북통일 문제에 조예가 깊고 관심이 있어 평통위원을 하려는 분들은 봉사할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어떨까.
동포사회에서 가장 연세 높으신 어르신들인 노인회에 몸을 담으신 분들은, 우리 모두가 보아서 좋도록, 성난 얼굴이 아니라 온화한 얼굴로 우리 모두의 어른들이 되신 걸로 존경받는데 만족하고 사실 수는 없을까.
어려운 시기에 맡은 지금의 LA총영사는 필자가 보기에 상당히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총영사들은 부임하면 현지사정 익히느라 한참동안은 제대로 일시작도 하지 못했지 않는가. 동포사회역사상 처음으로 현지출신 총영사가 탄생한 만큼 우리 좀 멀리보고 성숙한 태도로 서로 도와서 잘해나갈 수는 없을까.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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