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언어 및 신체발달 도구
장애 자녀에게 적극 활용해야
비엔나를 음악의 도시라 하던가? 그렇다면 보스턴은 미국의 비엔나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찰스강가에서는 여름 내내 음악회가 열리고, 고풍스런 다운타운에는 전통 깊은 음악학교와 음악 홀이 여기저기에 있다.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컨설바토리(New England Conservatory)는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음악학교이며, 바로 그 이웃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대중 음악학교라고 하는 버클리 음악학교가 있다.
뉴잉글랜드 컨설바토리에도 한국 유학생이 많아 한국에 제법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버클리 음악학교는 한국의 유명한 가수들이 유학을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보스턴의 또 다른 명물인 심포니 홀이 있다. 보스턴 심포니 홀에는 일년 내내 세계 여러 나라의 대연주가들이 공연을 한다. 새라 장(장영주)도 이곳에서 연주를 하였다.
우리 가족은 몇 년 전부터 보스턴 심포니 홀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내 남편은 보스턴 심포니의 일년 연주 일정 캐털로그가 나오면 가족들에게 어떤 공연을 원하는 지 물어 보고 미리 티켓을 사둔다. 우리 가족의 음악에 대한 애정은 둘째인 영한이가 바이얼린을 켜게 되어 그 풍미가 더해졌다. 음악회의 티켓을 사면 우리 가족 중에서 그 공연을 제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은 늘 우리 맏아들 진한이다.
진한이는 장르에 상관없이 여러 음악을 좋아하며 클래식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다.
며칠 전 자동차를 타고 가다 빙그레 웃더니 “문 - (moon)” 이라고 했다. 그때 베토벤의 월광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곡이 끝나고 나서, “새라 장” 이라고 해서 웬 새라 장인가 했더니 이번엔 비발디의 사계였다.
진한이는 다른 능력에 비해 음악을 듣는 귀가 밝다. 음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소리를 잘 듣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귀가 밝은 것과 음악을 구별하는 능력과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음악은 한두번 들은 것도 잘 기억해 내고 유명하지 않은 영화음악도 영화제목을 대곤 한다. 그걸 보고 어떤 친구는 진한이에게 악기 연주나 작곡 같은 걸 시켜보라고 한다. 그럴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진한이가 음악을 감상하는 능력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진한이는 어렸을 때 부터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영한이의 발표회에 갈 기회가 많았다. 영한이가 바이얼린을 배우기 시작할 즈음부터 진한이의 주의력 결핍장애와 과잉행동장애가 많이 줄어들어 그것이 가능했다. 진한이는 그 때 열다섯 살이 되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던 영한이의 음악 발표회에는 갈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의 음악회는 길지도 않고 아이들 청중도 많게 마련이어서 우리는 진한이의 행동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다가 영한이가 커가면서 청소년 교향악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진한이는 스무살 청년이 되어 더 의젓해졌다.
청소년 교향악단은 성인교향악단과 다를 바 없이 제법 길어 두어 시간 동안 연주를 한다. 처음에는 진한이에게 너무 긴 것 같아 데리고 가기가 좀 망설여졌지만 진한이가 가고 싶어해 함께 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진한이와 함께 보스턴 심포니의 연주를 들으러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바이얼린을 오랫동안 연주하게 된 영한이를 데리고 우리 부부는 교대로 심포니 홀에 가곤 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우리 가족은 진한이를 데리고 보스턴의 심포니 홀에 가기로 하였다. 진한이는 심포니 홀에 간다는 말을 듣는 날부터 들떠 있다.
우리가 진한이를 데리고 처음 보스턴 심포니의 연주에 가서 들었던 곡은 모짜르트의 바이얼린 협주곡 5 번이었다. 그 곡은 영한이가 오랫동안 연습하던 곡이어서 그 곡이 시작되자, 진한이는 반가운 친구라도 만난 듯이 내게 눈짓을 했다. 그리고는 그 곡이 연주되는 동안 바이얼리니스트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바이얼린 협주곡이 끝나고 연주된 음악은 우리 가족이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현대 음악이었다. 그 음악은 작곡가가 직접 지휘를 할 만큼 현대 음악 중의 현대 음악이었다.
아홉시도 훨씬 지나 시작한 그 음악은 취침시간이 열시인 내게는 자장가와 같았다. 나는 졸음이 와서 거의 눈을 뜰 수가 없었는데, 진한이는 몇 번 하품을 하긴 해도 꼼짝 않고 잘 앉아 있었다. 음악이 끝나고 심포니 홀을 나오며 남편은 마치 진한이가 연주라도 했던 것처럼 “진한아 잘했어”라며 진한이의 등을 다독거렸다.
최근 음악이 아이들의 지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물리치료나 언어치료와 마찬가지로 음악치료라는 것을 받기도 한다. 장애가 심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 노래나 악기 연주를 하게 되면, 언어와 신체감각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진한이처럼 노래나 악기 연주는 할 수 없더라도 음악은 듣기만 하는 것으로도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 안의 감정에 생명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기쁨뿐 아니라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화하여 표현함으로써 잘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진한이처럼 언어능력이 제한되어 감정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 음악은 그 역할을 대신 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진한이는 지적 능력에 비해 감성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기쁠 때는 꾸밈없이 활짝 웃고, 슬픈 얘기를 들으면 얼굴이 금방 시무룩해져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자고 한다. 진한이는 타고 날 때 부터 감성이 발달해서 음악을 유난히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음악의 도시 보스턴에 살면서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꽃피우게 되었다.
홍혜경 <프리스쿨 특수교육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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