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절때 출시… 올해 미국 시장의 다크호스 부상
세단수준의 승차감, 3만달러대 후반 가격에 연비도 강점
지난해 출시된 기아차의 럭셔리 SUV 보레고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명작’이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휘발유 소매가가 4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등 최악의 여건에서 출시됐지만 보레고를 경험해 본 운전자들은 ‘한국차가 이렇게 좋아졌나’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기자가 일주일 간 경험해 본 보레고는 유가가 안정된 올해 미국 자동차 시장에 다크호스로 주목받기에 충분한 명차였다.
보레고의 첫 인상은 강인함이다. 전면부는 곧게 뻗은 그릴과 후드가 강인함을 풍겼고, 여기에 조화를 이루는 헤드램프도 독특했다. 기아차의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이 그간 강조해온 디자인 철학인 ‘직선의 단순화’가 그대로 드러났다. 측면부는 특징적인 하부 투톤 분할 스타일을 적용했다. 유리창과 유리창 사이에 들어가는 필러는 바디와 동일한 컬러를 적용해 강인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후면에서도 남성적 이미지를 반영한 트렁크 도어가 강한 인상을 주었다. 동시에 리어 콤비램프는 헤드램프, 라디에이터 그릴 등 전면부 디자인 구성요소와 일체감을 보였다. 실내 디자인도 고급스러우면서도 심플했다.
시동을 걸자 부드럽게 울리는 엔진 소리는 외부와 내부가 큰 차이를 보였다. 외부에서는 4.6리터 V8 엔진의 묵직한 소리가 다소 크게 들렸지만, 문을 닫자 이내 실내는 조용해졌다. 보레고의 방음 장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도로에 올라서자 V8엔진의 강한 힘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스포츠카와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육중한 체구에도 민첩한 초기 가속력과 주행 중 고속 가속력은 운전자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속력이 100마일에 육박했지만 풍절음만 강하게 들릴 뿐 고속주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안들 정도로 안정된 주행능력을 발휘했다.
독일 ZF사의 6단 자동변속기를 채택해 변속감도 부드러웠고, 도요타 포러너, 닛산 알메다 등 경쟁차종에 비해 힘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레고는 리어 서스펜션을 독립현가 방식의 멀티링크 타입으로 장착, 프레임 방식의 SUV임에도 불구하고 세단 수준의 승차감을 구현한다. 일반 주행로에서도 급격한 핸들링에도 불구하고 지그재그로 자유롭게 움직였고, 고속주행 후 급제동 시에도 안정감이 있었다. 다른 차들은 측면 충돌 시에만 커튼에어백이 작동되지만 보레고는 전복 사고 시에도 승객의 머리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커튼에어백이 작용된다.
강력한 주행성능으로 무장한 보레고의 또 다른 무기는 뛰어난 경제성이다. 기자가 시승한 보레고 EX 4x4 모델은 시판 중인 보레고 가운데 가장 상위 모델로 음성인식 오디오,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 최첨단 편의장비를 갖췄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어 레버 우측에 설치된 ‘AUX’ 캡. 덮개를 열면 USB와 아이팟, AUX 단자가 모여 있다. USB는 메모리 스틱을 단자에 꽂기만 하면 자동으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러한 옵션에도 불구하고 시승 모델의 가격은 3만달러 후반대다. 동급 옵션의 경쟁차종이 5만달러를 넘어가는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보레고는 매우 경제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연비 역시 보레고의 경제성에 한 축을 담당하는 부문. 일반도로 15마일 고속도로 20마일의 연비는 4.6리터 엔진을 탑재한 대형 SUV의 그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일주일간 실제 주행을 마친 후 측정한 연비도 16.2마일로 EPA 측정 결과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경험해 본 보레고는 쏘렌토 등 기아차가 이전까지 생산하던 SUV보다는 확실히 발전한 느낌을 준다. 특히 주행 성능은 일반 대형 SUV는 물론 렉서스, BMW 등 럭셔리 브랜드와 비교해도 될 수준이다. 보레고는 분명 동급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한 높은 상품성을 갖고 있다. 유가 안정으로 SUV에 대한 소비자들의 애정만 다시 살아난다면 보레고가 기아차의 효자 모델로 거듭나는 것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간의 시승기간 동안 보레고는 16.2마일의 연비를 기록했다.
보레고의 4륜구동 시스템은 다이얼 셀렉터로 간단히 선택할 수 있다.
접속 단자를 이용해 Mp3와 USB 메모리에 저장된 음악도 들을 수 있다.
보레고의 3열 시트는 넉넉한 실내 공간을 제공해 성인 7명이 편안하게 탑승할 수 있다.
<심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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