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 아티스트 - (3)김홍석
해학과 재치로 한국사회 부조리 성찰
“지금 이곳에는 의도적으로 창녀가 초대되었습니다. 그녀는 오늘 미술 전시 개막행사에 3시간 참석하는 조건으로 60만원을 작가로부터 지급받습니다. 이 순간 여러분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창녀가 누구인지 찾아낸 분은 작가로부터 120만원을 지급받게 됩니다. 창녀를 찾아봅시다.” 작년 4월17일 서울 국제 갤러리에서 열린 김홍석 개인전의 개막 퍼포먼스는 숱한 화제를 뿌리며 거의 모든 일간지에 보도됐다. 이날 실제 창녀를 찾아낸 사람은 갤러리의 한 인턴이었고 그녀는 약속된 120만원을, 성매매여성은 60만원을 받고 갤러리를 떠났다.
‘난 세상 꼭대기에 있어요’
이 퍼포먼스의 제목은 ‘Post 1945’.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5년 이후 심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되는 현실을 비꼬는 의도로 김홍석 상명대 공연학부 교수가 연출한 쇼다. 이 퍼포먼스는 후에 누리꾼들의 비판과 여성단체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작가의 엉뚱한 예술적 도발은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밖으로 들어가기’(In through the outdoor)라는 역설적 제목의 이 전시회는 개막 퍼포먼스 외에도 볼 것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토끼다’(This is a Rabbit)란 작품은 사람 크기의 토끼인형 두 마리가 하나는 옆으로 누워있고, 다른 토끼는 차렷 자세로 서있는데 그 옆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있다.
“토끼인형 옷을 입고 연기하시는 분은 북한 출신의 노동자 이만길씨입니다. 이분은 불법체류자이지만 연기를 대행해주는 조건으로 하루 8시간, 시간당 5,000원을 지급받게 됩니다. 이 분의 성공적인 연기를 위해 만지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삼가주십시오”
이 글을 읽는 관람객은 어떤 마음이 될까? 꼼짝 없이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거나 누워있는 탈북자가 왠지 안됐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그러나 그 같은 감정도 잠깐, 토끼 속에 사람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펀지 고무인형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관객은 작가의 천연덕스런 거짓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게 된다.
또 ‘난 세상 꼭대기에 있어요’(Top of the World)란 작품이 있다. 한쪽 발이 잘리고 여성의 유방과 남성의 성기를 가진 이 조각품 옆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노동 현장에서 발 하나를 잘렸고, 성전환을 했으며, 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다가 이후 자신이 레즈비언이란 것을 깨닫고 죽었습니다”
김홍석은 이런 식이다. 엉터리 거짓말쟁이, 영민한 공상의 개발자, 실험적인 개구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는 블랙 코미디 같은 작업으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해학과 재치가 있고, 비관적이지 않은 비판이 있는 그의 작품은 웃음과 생각을 동시에 던져준다. 이번 전시의 한국 쪽 큐레이터 김선정은 그의 작업을 ‘속이는 예술’(cheating art)라고 표현했다. 가볍고, 재미있지만 또한 혼란스럽고 교란시키는…
김홍석은 비디오, 조각, 퍼포먼스, 회화, 드로잉, 설치 등 실로 다양한 매체를 전방위적으로 이용해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성찰하는 작가다. 물질만능시대, 외국인 노동자 문제, 성정체성의 혼란, 예술의 저작권과 복제 등. 그는 그럴 듯하게 만들어놓은 허구적 현실을 통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묻는다.
김홍석은 또 언어와 문자, 번역과 오역에 대해서도 특별히 집착한다. “한국말로 쓰인 세계사,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문학, 서양에서 만든 TV드라마, 외국어 교재 같은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그는 차용하고 변형하여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내고, 복제를 복제하고 번역을 재번안해 ‘새로운 원본’을 만들어냄으로써 오리지널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를 비판한다.
이번 라크마 전에 전시되는 ‘제주도’(Jeju Island)는 제주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판에 박힌 포즈들을 기록한 비디오 작업이다. 또 다른 비디오 작업 ‘G5’는 각기 다른 사람 5명이 한국어로 번역한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프랑스의 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런 불협화음은 한 나라의 국가를 외국어로 부를 때 그 노래의 애국적인 뭉클함이 과연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 목격하게 된다.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비디오 작업 ‘와일드 코리아’의 한 장면.
베니스·이스탄불 비엔날레 등 국제 미술행사 ‘단골’
◆김홍석 작가는
1987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상명대 예술대학 공연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비엔날레 작가’라고 불릴 정도로 베니스 비엔날레, 이스탄불 비엔날레, 티라나 비엔날레, 발렌시아 비엔날레, 에치코 츠마리 트리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타이페이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수많은 국제 미술 행사에 참여했고 오스트리아의 쿤스트할레 빈, 일본의 모리미술관, 미국의 워커 아트센터(Walker Art Center)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의 그룹 전시에 참여했다. 한국의 카이스 갤러리, 아트선재센터, 현대백화점, 코리아나 호텔, 스페이스 루프,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4년에는 LA의 레드캣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라크마 한국현대작가전에는 김홍석의 작품이 어느 작가의 것보다 수적으로 많이 전시된다. ‘마오와 닉슨의 만남’(Mao Met Nixon), ‘대화’(The Talk), ‘제주도’, ‘레코드-A4p3’, ‘와일드 코리아’, ‘문자적 현실’(Literal Reality 4 TAN), ‘세계로의 여행‘(Journey to the World), ‘퍼블릭 블랭크’(Public Blank), ‘브레멘 타운 뮤지션’(The Bremen Town Musicians), ‘토끼의 소파’(Bunny’s Sofa)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김홍석의 토끼인형에 대한 작업.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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