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학사에서 최초이자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해적은 오디세우스다.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그리스로 돌아가려던 오디세우스는 해신 포세이돈의 노염을 사 10년 간 지중해를 방황하는 신세에 놓인다. 그는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돌다 주민들이 환대를 해주면 얻어먹고 그렇지 않으면 노략질을 해 목숨을 부지한다. ‘오디세이’를 보면 오디세우스와 그 부하들이 마을을 약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털끝만큼의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메신저 헤르메스는 ‘상인과 도둑의 수호신’이다. 상대가 힘이 있으면 장사를 하고 힘이 없으면 약탈을 하는 것이 관행이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영어로 ‘해적’을 뜻하는 ‘pirate’은 그리스어의 ‘페리아’가 어원인데 ‘바다에서 운을 시험하다’는 뜻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리스인들뿐이 아니다. 현재 알파벳의 조상인 페니키아 문자를 발명하고 지중해의 대표적인 상업 민족이던 페니키아 인들도 수시로 해안 마을을 습격해 사람을 납치해 노예로 파는 일을 저질렀다. ‘오디세이’에는 페니키아 인에 의해 유괴돼 노예로 팔려간 여인 이야기도 나온다.
해적에 납치된 사람 중 유명한 인물의 하나는 시저다. 시저는 해적들이 자신의 몸값으로 당시 엄청난 액수인 20 탈렌트를 요구하자 “내 몸값은 그보다 높으니 50 탈렌트를 달라고 하라”며 “그 대신 풀려나면 너희들을 모두 잡아 죽이겠다”고 말한다. 해적들은 농담하는 줄 알고 웃으며 50 탈렌트를 받고 그를 놔줬다. 시저는 풀려나자마자 토벌단을 조직, 자신을 잡았던 해적들을 모조리 체포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
서양사에서 제일 대표적인 해적들은 바이킹이다. 지금은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알려진 스웨덴과 덴마크 등지에서 내려온 이들은 9세기 내내 유럽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들 중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뜻의 노르만 족은 1066년 영국을 침공, 영국의 지배자로 군림해왔다. 또 역시 바이킹의 일파인 루스 족은 러시아로 쳐들어가 러시아 민족의 조상이 됐다. ‘러시아’라는 말 자체가 ‘루스’에서 나온 것이다. 한 때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 제국과 소련 제국의 조상이 따지고 보면 과거 이웃 동네에 살던 해적이었던 셈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도 해적과 깊은 인연이 있다. 신대륙 탐험가로 이름을 날린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나 롤리 경은 모두 해적 출신이다. 이들은 아메리카의 마야 아즈테크 제국과 잉카 제국을 정복한 후 이들의 금은보화를 약탈해 유럽으로 싣고 가던 스페인 배를 습격하는 것이 전문이었다. 이들이 신대륙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약탈선의 병참기지로서 유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여왕이던 엘리자베스는 이를 국가사업으로 후원하고 이들이 빼앗은 금품의 일부를 챙겼다. 영국 국부의 상당 부분은 훔친 물건을 다시 훔쳐 이룬 것이다.
근대에 들어 이름을 날린 것은 북아프리카 연안의 바바리 해적들이다. 이들은 1500에서 1800년 사이 100만 명이 넘는 유럽인들을 노예로 팔아넘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신생국 미국은 1800년까지 이들에게 한 때 정부 예산의 20%를 몸값과 조공으로 바치기도 했으나 견디다 못한 나머지 1805년 최초로 해외 원정단을 파견, 이들을 토벌하고 만다.
요즘 소말리아 해적들로 세계가 시끄럽다. 해적 3명을 사살하고 미국인을 구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소말리아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원래 어부였다. 외국 선박들이 불법으로 조업하면서 생계가 위협받게 되자 자경단을 조직하게 됐고 물고기보다 사람을 잡는 것이 수익이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돈을 펑펑 쓰는 해적들은 상류층으로 대접받고 신랑 후보로 인기 1순위라고 한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데다 해적 말고는 생계를 이어갈 방도가 별로 없는 이들에게 외부의 규탄 소리는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강력한 정부가 들어서 이곳 치안을 장악하기 전까지 소말리아 해적들의 준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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