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명산을 찾아서 25-하
빌라저 픽 (Villager Peak, Anza Borrego State Park)
■Villager Peak
거리 13마일
시간 11시간
등반고도 5,000피트
난이도 5(최고 5)
시즌 11월~4월
추천등급 4(최고 5)
다음날 아침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우리가 가야 할 산맥이 북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큰 산맥이 두 곳이어서 어느 쪽으로 올라가는지 모르지만 가다보면 길이 나타나겠지. 언뜻 보아 그다지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 더 높은 봉우리는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면 오늘 의외로 쉽게 산행하는 것 아닌가? 초행길에 흔히 범하는 실수는 겉으로만 보고 산행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려 15개가 넘는 봉우리를 넘고 넘어 실망과 희망을 거듭하고 난후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후에야 내려 왔는데 13마일, 5,000피트 등반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된다.
길은 바위투성이였고 등산로는 매우 희미했다. 그나마 곳곳에 돌무더기를 쌓아 표식을 해 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이나 남가주 사막에서 자주 보는 오코티요(Ocotillo), 초야(Cholla), 유카(Yucca) 선인장들이 사막의 정원을 만들어 보려는 듯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기에 좋았던 선인장이 짧은 바지를 입고 있던 조 회원에게 맛을 보여 주려는 듯 종아리를 파고들어 피를 보게 한다.
꾸준히 올라가는 동안 메마르게 보이는 돌산 봉우리 위로 청명한 겨울하늘이 가득히 펼쳐진다. 갑자기 고막을 찌르는 굉음이 들려 걸음을 멈추니 살튼 시 인근의 해군기지에서 발주한 전투기들이 산위로 계곡 사이로 총알 같이 지나간다. 아마 이곳 사막지형을 연습비행하는 것 같다. 올라가는 동안 몇 번 휴식을 취했는데, 공기는 맑고 더 넓은 광야에 등산객은 우리 일행뿐이다. 약 2시간 지난 후 수천피트 아래로 떨어지는 클락 밸리(Clark Valley)가 눈에 들어온다. 등산로가 절벽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매우 위험해 보인다.
계속하여 봉우리를 넘고 넘으니 조그마한 봉우리가 또 기다리고 있다. 결국은 가장 높은 곳에 도착 했는데 정상 기록부가 없다. 책에서 읽은 대로 가짜 정상에 온 것이었고 약 30분 거리에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또 하나 있다. 열심히 달려 도착하니 정상표식 돌무더기와 함께 기록부 통이 있다. 안에는 각종 명함과 수첩에 빼곡히 다녀간 글이 적혀 있다. 조 회원이 대표로 설암산악회라고 적었다. 그리고 간단하게나마 점심을 먹기로 했다. 집에서 가져온 밥에 고추 장아찌, 깻잎 장아찌가 전부였지만 입맛을 충분히 북돋워 주었다.
정상 도착시간은 오후 1시30분이었고 오르는데 6시간이 소요되었다. 점심 후 허리를 펴고 북쪽을 보니 샌타로사 최고봉 래빗 픽(Rabbit Peak)이 원근에 보이는데 도저히 하루에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룻강아지 토끼 무서운 줄 모르고 지도만 보고 ‘Rabbit Peak’‘Rabbit Peak’했는데 직접 경험을 한 후에야 제대로 된 결정을 해야 함을 깨닫는다. 내려오는 길은 오르막보다 빠르고 쉽지만 돌로 가득한 산등성이의 희미한 등산로는 자칫 엉뚱한 곳으로 이어지기 일쑤이다. 내려오면서 펼쳐지는 코첼라 평야와 살튼 시, 클락 밸리의 사막 풍치는 매우 인상적이다.
자동차가 있는 S22 도로에서 산기슭까지 평지로 약 1마일을 걸어야 하는데 사막 지형이어서 곧바로 가로 지르기기 쉽지 않았다. 어두워지면 고생이 심할 것 같아 석양에 어두어둑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잰걸음으로 내리막길을 내 달린다. 하산만 4시간30분, 총 10시간30분이 소요되었다. 어두워진 산길을 뒤로 하고 차에 도착하니 또 하나의 난코스를 해치운듯한 뿌듯한 기분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조 회원이 저녁을 내겠다고 하여 근처 순두부 식당에서 맵고 얼큰한 식사를 한 후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피곤한 경황에도 다음 산행을 위해 주섬주섬 장비를 정리해 본다.
<자료제공: 김인호 산악인>
겨울 산행에 제격인 빌라저픽은 사막의 정원답게 선인장으로 가득하다
하산길에 아득이 내려다보이는 클락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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